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일이 결정된 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들이 동시에 몰려 혼잡한 모습이었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단체는 손에 ‘탄핵 무효’ ‘대통령 복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헌재를 향해 고성을 내질렀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진이 인쇄된 종이를 바닥에 붙이고 행인들을 향해 “밟고 가지 않으면 빨갱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헌재 인근 재동초 앞에도 윤 대통령의 지지자 20여 명이 몰려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탄핵 무효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집회 참가자도 있었다. 학교 경비원이 “학생들이 수업 중이니 마이크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구호가 잦아들었지만 이내 목청은 다시 높아졌다.
탄핵 찬성 측 역시 심판일이 4일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안국역 1번 출구 인근으로 몰려 “윤석열을 파면하라” “대통령 무능은 범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헌재에 탄핵소추안 인용을 촉구했다. 근처를 지나던 보수 단체 지지자들이 이들을 향해 고성과 욕설을 내뱉고 휴대폰으로 얼굴을 촬영하자 진보 단체가 항의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도 발생했다. 진보·보수 단체들이 선고 당일은 물론 주말까지 대규모 집회에 나설 예정인 만큼 양측 간 물리적 충돌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철야 집회를 이달 4일까지 이어간다고 밝혔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선고일까지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매일 집회를 진행한다. 금요일인 탄핵 심판 이후에도 주말 집회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비상행동은 5일 광화문에서 헌재까지 범시민 대행진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국본 또한 주말마다 진행하던 연합 예배를 이어갈 계획이다. 탄핵 심판일 전후로 수십만 명의 인파가 헌재 앞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찰은 철통 보안 태세에 돌입했다. 이날 경찰은 긴급히 기동대를 배치해 시위대를 진정시키는 한편 바리케이드 등을 이용해 상호 간의 접근을 차단했다. 헌재 인근 경비에 나선 경찰은 탄핵 선고일이 발표된 직후 경비 강화에 나섰다. 헌재 정문 안팎에 버스로 차벽을 두르는가 하면 담벼락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월담 인원 감시를 위해 골목 곳곳에 경찰을 배치했다. 각종 교통 통제도 이뤄졌다. 경찰은 이날 정오부터 안국역 1번·6번 출구를 제외한 나머지 출입구를 봉쇄하고 안국역사거리부터 헌재 방향 북촌로 차량 통행을 막았다. 또한 오후 1시부로 헌재 인근 반경 100m가량을 진공 상태로 만들겠다고 헌재 앞에 있는 국민변호인단 농성 천막에 통보했다. 당초 선고일 하루에서 이틀 전부터 헌재 앞 통제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었는데 이를 앞당긴 것이다.
선고 당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에도 나선다. 앞서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시 차벽 인근에 몰린 시위대에 짓눌려 혼수 상태에 빠진 2명 등 총 4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선고 당일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가용 인력을 100% 동원해 인명 피해를 막을 계획이다. 서울에만 전국 가용 기동대의 60%에 해당하는 210개의 기동대 소속 1만 4000여 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헌재 경내에도 형사를 배치하고 차벽을 넘어 청사에 난입할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과격 시위에 대비해 보호복을 착용한 기동대원들은 캡사이신 분사기와 삼단봉을 지참할 예정이다. 무인기를 무력화하는 ‘안티드론’ 장비 또한 현장에 배치된다. 안국역은 선고 당일에 첫차부터 역을 폐쇄한 뒤 무정차 운행한다.
재판관에 대한 신변 보호도 강화한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달 31일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탄핵 심판 선고를 전후해 신변 보호 인력을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며 “자택 안전관리도 112순찰과 연계해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 인근 초중고는 대대적인 휴업 공지에 나섰다. 선고 당일에 재동초·병설유치원, 운현초·유치원, 교동초, 덕성여중·고 등 헌재 인근 11개 초중고·유치원·특수학교가 휴업한다. 대통령 관저 인근 한남초·병설유치원 역시 선고 당일과 이달 7일 임시 휴업한다. 선고 전날에도 재동초·운현초 등 8개 학교는 휴업하고 중앙중·고, 대동세무고는 단축 수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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