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긴급 생방송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헌정 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국회에 군이 투입되는 초유의 상황으로 이어졌고 이후 국정은 122일간 대혼돈에 휩싸였다.
윤 전 대통령의 담화에 이어 계엄 포고령이 내려진 오후 11시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과 국회 직원 등이 이를 막았다. 우원식 국회의장 등 의원 일부는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진입해 다음 날 오전 1시 2분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켰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여당 의원 18명도 여기에 찬성했다. 윤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4시 27분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이후 내란죄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 시도는 초반부터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난항을 겪었다. 경찰은 내란 혐의를, 검찰과 공수처는 직권남용 혐의를 중심으로 각각 수사를 진행했다. 공수처와 경찰·국방부가 구성한 합동수사본부는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올해 1월 3일 첫 집행에 나섰으나 대통령 경호처의 저지로 실패했다. 이후 공수처는 군사·공무상 비밀 압수수색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110·111조 적용을 배제한 두 번째 영장을 발부받았다. 공수처는 1월 15일 두 번째 집행 시도 끝에 윤 전 대통령을 체포·구속했다.
탄핵 절차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7일 진행된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은 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며 부결됐고 일주일 뒤 재표결에서 재석 의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후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하면서 헌법재판소는 정원 9인이 아닌 8인 체제로 심리를 진행하게 됐다. 국회가 올해 1월 3일 열린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 혐의를 제외하자 윤 전 대통령 측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강력히 반발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수사도 내내 논란에 휩싸였다. 공수처 수사가 지연되자 1월 23일 사건이 검찰로 이관됐고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구속 기간 연장 신청은 두 차례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1월 26일 고·지검장 회의 후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은 2월 20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 재판정에 섰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죄 수사의 권한이 불명확하고 구속 기간 계산이 잘못됐다며 장기 구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받아들여 3월 7일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 법원은 구속 기간을 ‘날짜’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이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하면서 윤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3월 8일 석방됐다.
혼란의 종지부는 결국 헌법재판소가 찍었다. 4일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사건 접수 후 111일 만에 전원 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 선포가 야당 횡포에 맞선 ‘경고성 조치’였다고 항변했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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