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며 국회 측에 ‘대화·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쓴소리를 쏟아냈다.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발령 △군경 국회 투입 등 헌법 질서 파괴 행위를 이유로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지만 야당 또한 이번 사태에 원인 제공을 한 만큼 다수당으로서 보다 책임감 있는 정치를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도 일부 받아들이며 보수 지지자들의 반발을 막는 한편 국민 통합까지 고려한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4일 오전 11시 22분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탄핵 심판 선고 주문을 읽으며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야당 측을 꾸짖었다. 문 대행은 특히 주문을 낭독하기 전 결론에 이르러서는 약 1200자를 할애해 야당에 쓴소리를 했다. 헌재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이례적으로 22건에 달하는 탄핵소추안을 추진한 것을 비롯해 2025년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야당 단독으로 의결되는 등의 독단적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 곳곳에서 야당의 이른바 ‘일방통행’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114쪽 결정문에는 ‘야당의 전횡’이라는 윤 전 대통령 발언이 그대로 담기기도 했다. 이를 포함해 ‘더불어민주당’이 27번, ‘야당’이 39번 언급되며 결정문의 무게중심을 어느 정도는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는 “윤 대통령 취임 이래 야당 주도의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에 따라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탄핵 심판 중 정지됐다”며 “윤 대통령이 수립한 주요 정책은 야당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야당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국회를 두고 권력 남용이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존중돼야 한다”는 문구도 담았다. 파면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해 온 일부 의견은 받아들인 셈이다. 양측 대립이 일방의 책임으로 보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대화·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국정 마비 책임이 일부 야당 측에도 있다는 지적은 국회 탄핵소추안 발의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보충 의견에도 그대로 담겼다. 주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관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 다른 회기 중 다시 발의하는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입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탄핵소추안의 무제한적 반복 발의가 허용될 경우 고위공직자 지위의 불안정 및 국가 기능 저하를 초래하고 탄핵제도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정 재판관의 지적이다. 보충의견은 법정의견의 결론에 동의하면서 그 이유를 보충할 필요가 있을 때 내는 의견을 뜻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야당의 일부 책임도 언급한 것은 국민 갈등이 극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화합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헌재가 그동안 4개월 가까이 장고를 이어가며 논의한 결과 여야 지지자들 모두가 어느 정도 용인할 만한 ‘타협의 내용’을 결정문에 녹아들게 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도 잘못했지만, 국회도 잘한 건 아니라는 메시지는 탄핵 반대 측에 대한 메시지”라며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잘못이 아니라고 언급한 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진영 사이 갈증을 가라앉히자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헌재는 국회를 협치·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척결의 대상으로 삼은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다수당이라고 해서 폭주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을 함께 언급했다”며 “소수 의견 존중과 관용, 절제, 대화,타협 등 단어를 통해 화합이라는 부분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고 밝혔다. 타협과 협상이라는 정치의 기능을 되살려야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해소될 수 있음을 헌재가 우회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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