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제작사 벨(Bell)社가 개발한 ‘UH-1’은 본래 수송형으로 개발돼 주로 병력과 환자, 화물을 수송하고 구난과 활력지원용으로도 운용됐다. 그러나 베트남전을 통해 각종 무장을 탑재한 건십(gunship) 또는 무장헬기로도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인 헬리본 시대를 연 헬기다. 무장장착형 UH-1은 본격 공격헬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199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UH-1을 대체하기 위해 현재 전 세계인 대명사인 다목적 헬기 미국 시코르스키(Sikorsky)社 ‘UH-60 블랙호크’로 대체를 추진했지만, 항공우주산업을 보유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나토는 새로운 나토 표준형 헬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나토 표준 헬리콥터(NATO Helicopter 90)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NH-90’의 개발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83 나토산업자문그룹(NATO Industrial Advisory Group) SG14의 초기 연구부터다. 하지만 처음 약속과는 달리 사업 진행 방향과 회원국 간 일감 배분 문제, 영국의 사업 탈퇴 등으로 장기간 개발이 지연됐다.
처음에 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은 1985년 한자리에 모여 다목적 헬기를 공동 개발하기로 결정했지만, 영국은 1987년 슬그머니 빠졌고, 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가 공동투자해 NH인더스트리즈를 세웠다.
거렸다. 1994년 5월부터는 비용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이 잠시 멈췄고, 가격 협상 문제로 실제 생산 계약도 1999년에서 2000년으로 1년 지연됐다. 1990년 초반에 제작된 헬리콥터였던 NH-90은 첫 번째 비행도 1996년 실시했고, 양산은 2004년 5월 시작한 ‘지각 프로젝트’가 됐다. 이처럼 양산이 지연되는 동안 경쟁 기종인 UH-60이 전 세계적으로 1000여 대 넘는 수량이 생산된 베스트 헬기로 잡으면서 시장 선점을 놓쳤다.
다만 NH90은 초반에 많은 기대를 받았다. 디지털 비행 통제시스템인 플라이-바이-와이어(FBW)를 헬기 중 처음으로 장착했다. 동체를 복합소재로 만들었고, 스텔스와 소음 설계가 적용됐다.
결국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생산량이 주문량보다 턱없이 부족해 매번 인도 시기를 어길 수밖에 없었다. 노르웨이 경우 2001년 14대의 NH90을 계약해 2005~2008년 동안 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2011년 12월에 첫 NH90이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2022년이 되서야 노르웨이 NH90 13대를 인수했다. 화가 난 노르웨이는 계약 파기와 함께 환불을 요구했다.
2023년에는 호주 육군은 MRH90 타이판(Taipan) 기동헬기를 더 운항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MRH90은 유럽 NH인더스트리즈의 NH90 다목적 헬기를 호주 현지에서 생산한 것이다. 국내에선 시중은행과 같은 이름이라 ‘농협(NH) 헬기’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졌다.
호주는 모두 46대의 MRH90(NH90)을 보유 중이다. 호주 육군에 40대, 호주 해군 6대가 각각 배치됐다. 원래 퇴역 일정은 2037년이지만, 14년 빨리 물러나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2024년 1월부터 MRH-90의 퇴역이 이뤄져 ‘폐기’로 진행될 것이라 밝혔고, 실제 완전히 분해돼 땅에 묻히는 MRH-90헬기 잔해들이 공개하기도 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군이 퇴역하는 MRH-90헬기를 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비용과 효율성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가격은 더 큰 골칫거리였다. 1988년 기준 NH-90의 총개발비 9억 6000만 유로는 현재 가치로 30억 유로(약 4조 8000억 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호주 육군과 해군이 도입한 NH-90의 계열형인 MRH-90 타이판(Taipan)은 대당 가격이 블랙호크보다 두 배 이상 비싼 6500만 호주달러(약 570억 원)로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NH-90은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각지에서 말썽이 발생하고, 운용유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퇴역 이유는 간단하다. 잦은 사고다. 2023년 7월 호주가 주도하는 다국적 훈련인 탈리스만 세이버(Talisman Sabre) 중 호주 육군의 NH90이 추락해 승무원 4명이 숨졌다. 앞서 같은해 3월에도 호주 육군의 NH90이 떨어졌는데 1년 사이 2차례 사고가 발생했다. 호주군은 대체 기종은 구형 헬기인 미국의 UH-60M 블랙호크를 긴급 대체 수단으로 선택했다.
사실 NH-90은 경쟁 기종인 블랙호크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성능으로 완성된 것은 무기체계로 평가 받는다. 블랙호크 보다 케빈의 높이와 길이가 더 클 뿐 아니라 육군 버전인 NH-90 TTH(Tactical Transport Helicopter)의 경우 20명의 무장 병력 또는 2.5t의 보급품을 실을 수 있다. 외부에 장착한 화물을 옮기는 슬링으로 4톤의 화물 탑재도 가능하다.
기동헬기와 대잠헬기 사상 최초로 저피탐(Low Observability) 기술이 적용됐다. 제작사는 완전하지지는 않지만 소음과 적외선(IR) 신호, 레이다 반사 면적(RCS)을 경쟁 기종보다 낮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또 세계 최초로 헬기 비행 조종에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가 사용돼 기존 헬기보다 반응성이 빠르고 조종사가 초저공비행(NOE)을 더 쉽게 수행할 수 있다. 동체 전체는 알루미늄, 두랄루민이 아니라 탄소 복합섬유와 유리섬유로 이뤄져 있다. 승무원과 승객 좌석은 초속 11m의 수직 하강 충돌에도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모든 주요 시스템은 이중으로 돼 엔진을 비롯한 주요 기관이 하나가 고장 나도 나머지 활동을 수행하는 게 가능하다. 기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도 완벽하다. 처음부터 적 위협을 탐지하기 위한 레이저 경고 수신기(MWR), 미사일 발사 탐지 시스템(LFK AN/AAR-60 MILDS), 탈레스(Thales)사의 자체 전자전 시스템(EWS)을 갖춰 적이 미사일로 공격하면 채프(Chaff)와 플레어(Flare)가 자동으로 발사된다.
여기에 고장 감지 기능은 물론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까지의 작전을 보장한다. 임무 신뢰성은 97.5%, 30년 동안 1만 시간의 비행 수명을 보장한다. 평균 무고장 시간(Mean Time Between Failures)은 4시간 이상을 설정했다.
특히 처음부터 다목적 임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점도 특별한 강점이다. 육군 버전인 NH-90 TTH(Tactical Transport Helicopter)는 전술 수송 및 수색구조 임무에 맞춰졌고, 해군 버전인 NH-90 NFH(NATO Frigate Helicopter)에는 하부 탐색 레이다 및 디핑소나(Dipping sonar)와 소노부이(Sonobuoy) 장착 공간, 어뢰 탑재 무장 장착대를 갖췄다.
하지만 최신 무기라고 무조건 좋을 수 없는 없다.
첨단 무기 대부분은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현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이전 세대 무기보다 현재 세대 무기가 몇 배로 강력하고 효율적이라 세대교체는 당연하다. 그러나 NH-90 사례처럼 아무리 최신 기술이 적용돼 우수한 성능과 효율성을 지닌 무기도 개발 사업관리의 실패할 경우, 일정 지연과 단가 상승, 무엇보다 이전 세대 무기와 확고한 차별점을 확보하지 못해 기존 무기 보다 경쟁력에 밀려 먼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이전 세대로 분류되는 기존 무기체계도 21세기 들어 유행하는 에비오닉스(Avionics) 기술 발전과 지속 업그레이드, 신형 고효율 엔진과 같은 주요 요소는 기존 헬기도 업그레이드를 통해 차세대 무기체계와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발 지연과 공동 제작사 간 갈등에 잇따른 사고까지 겹치면서 유럽산 신형 헬기 ‘NH-90’은 ‘베이퍼웨어’로 불리고 있다. 최첨단 성능을 갖춘 기종이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란 소개로 애호가를 들뜨게 하지만, 출시가 차일피일 연기되는 것은 물론 최신 기술의 적용될 것처럼 소개했지만 정작 해당 기술의 구현이 불가능한 제품, IT 업계에서는 이를 베이퍼웨어(Vaporware)라고 부른다.
개발지연·비용 증가로 ‘베이퍼웨어’ 취급
현재 유럽산 신형 헬기 ‘NH-90’ 기종 운용 국가들을 살펴보면, 프랑스군이 가장 많다. NH90에 카이만(Caïman)이라는 제식명을 붙여 운용 중으로, 프랑스 육군에서 NH90 TTH를 63기, 프랑스 해군에서 NH90 NFH를 27기 도입했다.
2020년 10월 프랑스군에서 제4 특수작전항공연대에 공급하기 위한 특수작전형 파생형인 NH90 TFRA Standard 2 10대에 대한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2023년 12월에 NH90 TFRA Standard 2를 8대 추가 도입을 결정해 2025년까지 18대의 NH90 특수작전임무형이 도입될 예정이다. 그리스 육군은 NH90 TTH를 총 34기 도입 예정이며 12기 운용 중이다.
벨기에는 항공구성군에서 NH90 TTH를 4기, 해상구성군에선 NH90 NFH를 4기 운용 중이다. NH90 NFH는 1기 추가 도입해 총 5기를 운용할 계획이다. 노르웨이 공군은 NH90 NFH를 총 14기 도입할 예정이지만, 6기 운용 중에 도입을 중단했다. 운용하던 기체는 반납 예정으로 후속 기체로 MH-60R 시호크 6기를 구매했다.
핀란드 육군은 NH90 TTH를 총 20기 운용 중이고, 스웨덴 공군에서 HKP14이라는 제식명으로 총 18기를 운용하고 있다. NH90 TTT/SAR은 HKP14E, NH90 SAR/ASW HKP14F라는 제식명으로 분류해 각각 9기씩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육군에서 NH90 TTH를 UH-90A라는 제식명으로 60기, 해군에서 NH90 TTH/NH90 NFH를 MH/SH-90A라는 제식명으로 56기 운용 중이다. 스페인 육군은 HT-29 카이만(Caimán)이라는 제식명으로 NH90 TTH를 22기 도입했고 총 45기 도입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도 오만 왕립 공군에서 NH90 TTH를 총 20기 운용 중이고, 카타르 공군이 NH90 TTH를 16기, 카타르 해군에서 NH90 NFH를 12기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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