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가에서 ‘최고 인기 전공’으로 꼽혔던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한 수험생이 올해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기술(IT) 업계의 취업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스스로 학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향후 개발자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수험생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6일 입시 업계에 따르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 주요 대학 9곳의 컴퓨터공학 전공 수시 경쟁률은 2023학년도 25.4대 1에서 2024학년도 24.7대 1로 소폭 낮아졌고, 2025학년도에는 23.2대 1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모집 인원은 505명에서 471명으로 줄었고, 지원자 수 역시 1만 2837명에서 1만 910명으로 1927명 감소했다. 정시도 비슷한 흐름이다. 주요 8개 대학(이화여대 제외)의 정시 지원자는 2023학년도 1812명에서 올해 1586명으로 226명 줄었고, 경쟁률도 같은 기간 4.4대 1에서 4.3대 1로 하락했다. 코로나19 직후 플랫폼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컴퓨터공학과로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지원이 집중됐던 것과 다른 양상이다.
최근 2년 새 컴퓨터공학과의 인기가 다소 시들해진 것은 인공지능(AI)을 내세운 유사 전공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지원자가 분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로 정보기술(IT) 업계의 채용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등 주요 IT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채용 규모를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최대 개발자 커뮤니티 ‘오키(OKKY)’에 따르면 직원 수 100명 이상인 IT 기업 18곳 중 절반이 올해 신입 채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에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분리해 채용하던 기업들도 최근에는 두 영역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발자를 우선적으로 찾는 추세다. 채용 규모가 줄면서 인문계 출신이 주로 맡아온 서비스 기획 등 비개발 직무에도 컴퓨터공학 전공자나 개발자 출신의 진입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이른바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취업 불안이 감지되고 있다. 이직을 준비 중인 한 개발자는 “채용 시장이 너무 얼어붙어 연봉을 높이는 협상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인센티브 지급을 명목으로 연봉을 줄이려는 분위기까지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AI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개발자 업무의 범위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스타트업 개발자는 “10년 후에는 극소수의 박사급 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은 AI 분야에서 밀려날 것 같은데 이 길을 택한 게 맞았는지 의문이 든다”며 “요즘 개발은 결국 누가 더 구글링을 잘하느냐의 문제고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도 벅차다”고 말했다.
다만 입시 흐름과는 별개로 고도화된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재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컴퓨터공학은 최근 대학가에서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 ‘융합형 AI’ 전공과는 달리 AI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 학문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평가다. 한 대학 총장은 “현재 AI·데이터 분야 인력이 일시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AI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석·박사급 고급 인재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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