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시작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이 초기부터 삐걱대고 있다. 시업사업을 시작한지 8개월 만에 참여 병원 20곳 중 3곳이 참여 중단 의사를 밝혔는데, 추가 지원이 없어 공석을 메우지도 못하는 처지다.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를 이뤄내겠다던 정부 의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6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 2월 부산, 대구 소재 요양병원들을 상대로 간병지원 시범사업 참여 공고를 냈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4월부터 10개 지역에서 시작한 시범사업 참여 병원 20곳 중 3곳이 작년 말 이탈한 탓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참여 중단 기관들이) 간병지원 대상자 모집, 간병인 수급관리의 어려움 등의 사유로 미참여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말 '간병지옥'으로 불리는 환자 가족의 부담을 덜고자 요양병원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간병비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2단계에 걸쳐 추진하고, 2027년에 본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총 85억 원을 들여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의료 최고도·고도 환자 1200명의 간병비와 병원 운영비 등 지원하는 1단계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혼수상태, 인공호흡기 부착 등 의료필요도가 높으면서 장기요양등급 1~2등급에 해당하는 환자 중 통합판정체계를 거쳐 병원 1곳당 약 60명에게 월평균 60만~8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한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공단에서 제시한 교육을 이수한 간병인과 매칭이 이뤄지고 간병비 본인부담률이 40∼50% 수준으로 낮아진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1406명의 신청자 중 74.5%(998명)이 통합판정 문턱을 넘었다. 다만 대기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사망, 전실 거부, 퇴원 등의 사유로 이탈자가 발생해 실제 이용자는 895명(63.7%)에 그쳤다. 10명 중 6명 꼴로 지원을 받은 셈이다. 참여 병원들은 통합판정의 문턱이 높은 데다 선정 기준이 모호해 운영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사업 참여 환자만을 위한 별도 병동을 운영하도록 규정한 데 대해 불만이 높다. 판정에 평균 한 달 이상의 기간이 걸리는데, 일반 환자와 혼합배치가 불가능해 병실을 놀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란 얘기다. 선정 결과 예측이 어려우니 간병인 관리도 쉽지 않다. 실제 참여 병원 중 5~6곳은 간병인의 절반 이상이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에 참여 중인 요양병원장은 “간신히 간병인을 구해 교육을 시켜놓아도 언제, 몇명의 환자가 선정될지 모르니 계속해서 중도 이탈이 생긴다”며 "대다수 환자는 5개월의 지원 기간이 끝나면 병실을 이동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이를 납득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 일도 빈번하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 올해 예산이 61억 원으로 삭감되며 요양병원에 주어지던 지원비는 반토막났다. 정부의 사업 기준에 맞추려고 중증 환자 위주로 병실을 채우고 간호간병인력을 추가로 채용했는데 대상자 선정이 안돼 되려 손해를 보는 병원들도 생겼다. 기존 병원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남아있는 상황이니 신규 지원자가 나설리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사업을 집행하는 바람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채 예산만 낭비했다고 지적한다. 요양병원은 주로 회복기 또는 만성질환자의 치료를 담당하는데, 애시당초 급성기 병원과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급성기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요양병원에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새로운 국가 간병서비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며 "요양병원이 의료·요양·돌봄서비스 체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려면 간병 자체에 대한 급여화의 법적 근거 마련과 복지부의 촘촘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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