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 시장 폭락에도 고강도 관세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주요국 정상들은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 나서 자국의 대미 투자를 강조하고 나섰으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 협상을 위해 미국을 직접 찾았다
6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 풀기자단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시장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지면 정책을 조정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 질문은 멍청하다. 나는 아무것도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무언가를 고치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의 무역구조를 고치려면 관세라는 약을 먹어야 하고 이에 따른 시장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대(對)중국 무역적자는 1조 달러이며 우리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나는 협상하고 싶지만 그들은 (대미 무역) 흑자를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은 지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는 유럽, 아시아, 전 세계의 많은 사람과 대화했다”면서 “그들은 정말로 협상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도 “언젠가 사람들은 관세가 매우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참모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9일 상호관세 발효와 관련해 “연기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농담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또한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파장을 축소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출혈이 있더라도 미국의 만성 무역적자를 바꾸는 방향으로 세계 무역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관세 부과에 따른 리쇼어링(제조업 국내 복귀)이 국가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는 판단도 주요 배경이다. 이날 러트닉 장관은 “자동차부터 전자레인지까지 모든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전부 해외에서 생산된다”며 “이는 국가 안보 문제다. (유사시를 대비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지지층이 단기간의 주가 흐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자산으로 주식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은퇴 연금 계좌를 소유한 사람의 자산가치 하락률은 최근의 주가 하락보다는 낮을 것으로 분석했다. 대규모 감세를 담은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물가가 오르더라도 미국인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자리하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 등 미국에 대항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 나라들은 협상을, 유럽연합(EU) 등은 맞대응을 검토 중이다. 이시바 총리는 7일 오후 9시께부터 약 20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상호관세’ 조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NHK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은 미국에 막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으며 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일본에 부과한 24%의 상호관세 조치를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 총리는 또 “가능한 한 빨리 방미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7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상호관세 문제를 논의한다. 대만의 라이칭더 총통은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며 대미 투자 확대 등을 추진한다.
인도 역시 현재 협상 중인 무역협정 체결에 집중할 방침이다. 로이터통신은 인도 정부가 230억 달러(약 33조 8000억 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EU·캐나다 등은 일단 보복에 방점을 찍고 있다. EU는 7일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보복관세 대상 품목을 확정하고 27개 회원국에 제시할 예정이다. 이번 보복관세 대상 품목은 9일 회원국 표결로 확정된다. 이달 2일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는 빠진 캐나다는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자동차에 25%의 맞불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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