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세계에서 주택 소유자들에게 가장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로 떠올랐다. 주택 가격이 상승한 가운데 인지세와 지방세, 자본이득세, 상속세 등도 잇따라 올라 집주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8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부동산 세금들로 영국 주택 소유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자산관리 회사 퀼터에 따르면 영국에서 1주택 소유자가 50만 파운드(약 9억 4000만 원) 상당의 두 번째 집을 상속 받아 10년 동안 보유할 경우 내야 하는 세금이 28만 7065파운드(5억 4000만 원)에 달할 수 있다. 부동산 자산 가치의 6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영국 주택 평균가격인 26만 8000파운드(5억 원)짜리 주택에도 15만 8835파운드(3억 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세무 서비스 회사인 라이언의 분석에 따르면 2023~2024 세무연도에 영국 정부가 지방세와 사업세, 인지세로 거둬들인 세수는 국내총생산(GDP)의 3.7%에 달했다. EU 평균(1.4%)과 G7국가(2.7%) 대비 높을 뿐 아니라 세금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3.5%)보다도 과도한 수준이다.
가장 높은 세금은 부동산을 구매할 때 내는 인지세(취등록세)다. 영국에서 지난 30년간 인지세는 적은 금액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부과되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의 주택 구매자들에게 상당한 비용 부담으로 확대됐다. 처음에는 42만 5000파운드 이상의 주택에만 부과됐으나 현재는 25만 파운드(첫 주택 구입일 경우 30만 파운드) 이상에 부과된다. 두 번째 주택을 구입할때 적용되는 세율도 3%에서 5%로 확대됐다.
주택을 소유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 매년 내야 하는 지방세 세율도 타 유럽 국가 대비 높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지방세 세율은 평균 1% 미만으로 증가했지만 2016년 이후 올해까지 평균 4.3%나 올랐다. 지난해 4월부터는 2주택 보유자들에게 최대 100%의 추가 지방세를 부과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상속세는 32만 5000파운드를 초과하는 재산에 대해 40%의 세율이 부과된다. 주택을 매각할 때 부과되는 자본이득세는 기본세율 납세자(소득 5만 파운드 이하)의 경우 시세차익의 18%를, 고소득자는 24%를 내야 한다. 대출 브로커인 앤더슨 해리스의 애드리안 앤더슨은 "영국에서 부동산을 사고, 소유하고, 매각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에 글로벌 고객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상속받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수요가 줄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고율 세금정책에도 영국 집값은 꾸준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런던 등 대도시에서는 높은 외국인 수요 등과 맞물려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추세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올 1월 주택 매물 호가는 크게 올라 2023년 5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거래 가격도 오름세다. 유로뉴스는 영국 최대 건설협회인 네이션와이드를 인용해 지난 2월 영국의 평균 주택 가격이 전월 대비 0.4% 상승한 27만 493파운드를 기록하며 6개월 연속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네이션와이드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달간 주택시장 활동이 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에는 2023년 대비 총 주택 거래량이 14%나 늘어났다"고 전했다. 영국의 경제사회연구소는 최근 주택 문제에 대해 "금융·조세·자산 불평등이 얽힌 시스템의 실패"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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