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태풍이 세계 경제에 휘몰아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지고 있다.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를 띠는 데도 미·중 무역 전쟁 격화에 위안화가 약세가 심화되자 원·달러 환율도 치솟아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목전에 뒀다. 최근 미 국채 시장에서는 10년물 등의 금리가 떨어졌다 단기간에 급등했지만 달러 가치는 되레 하락세를 보이는 등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현상도 나타나도 있다.
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0.8원 오른 1484.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6일 개장가(1488.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환율은 장 초반부터 1487.6원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12월 27일 장중 고가(1487.2원)를 뛰어넘더니 일부 낙폭을 줄이다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 종가(1473.2원)보다 10.9원 오른 1484.1원에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약 16년만에 최고치다.
원화 가치가 크게 고꾸라진 건 트럼프 고관세 영향에 따른 위안화 약세 영향이다. 미국이 이날 오후 1시 1분부터 중국 일부 상품에 대해 104% 관세 부과를 시작한 한 가운데 중국의 역외 위안화 가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추가 절하 움직임이 예상되자 위안화와 연동성이 높은 원화도 속절없이 추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달러화 가치가 주요 6개국 통화대비 하락했는데도 위안화 약세에 원화가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조만간 환율이 1500원을 넘어 심리적 천장을 뚫을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만큼 양국의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 경제에 끼치는 하강 위협도 커지기 때문이다. 윤재호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중 무역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위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관세 협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환율 상방이 뚫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은 글로벌 채권 시장도 요동치게 하고 있다. 8일(현지 시간) 미국 국채 시장에서 10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0.11% 포인트 오른(국채 가격 하락) 연 4.29%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 한때 4.2%를 넘겼던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4일 한때 3.85%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2거래일 연속 급등한 것이다 지난 6일(3.99%)과 비교하면 0.3%포인트나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로 중국 측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도하며 보복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통상 미국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면 미 국채 시장은 강세를 띠지만(금리 하락) 금리가 되레 오르자 이 같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채권 금리 급등은 미국 경기 펀더멘털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으로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투매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도 “안전자산 심리가 강화하면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금이동이 일어난다”면서 “하지만 이 논리가 통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장이 됐다는 건 중국의 미 채권 매도나, 투자자들의 채권 이익 실현 움직임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 채권에 대한 유인이 높아져서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채권 회피 심리에 달러의 힘도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DXY)는 이날 오후 기준 102대로 전날보다 0.8% 하락한 상태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다른 나라 국채 금리가 미국보다 높아졌으면 달러 약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주요국 가운데 금리 변동폭이 미국 만큼 심화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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