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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다시 선택의 시간이 시작된다

‘인간이 도마뱀 지배 받는 행성’ 얘기

‘차악’에 익숙, 상식 붕괴 韓정치 연상

국가 중대 기로 속 54일 뒤 차기 대선

국난극복 자질 갖춘 ‘좋은 리더’ 뽑아야





영국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코믹 공상과학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인간이 도마뱀의 지배를 받는 행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행성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다. 인간들은 도마뱀을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도마뱀을 지도자로 선출하고, 자신들이 뽑은 정부이니 대충 원하는 정부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이들은 왜 도마뱀을 뽑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도마뱀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도마뱀이 정권을 잡을까 봐’ 그렇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次惡)’의 선택이라고 했던가. 선거 때가 되면 많은 유권자들이 최선이 보이지 않는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덜 나쁜 후보라도 고르기 위한 체념과 내적 타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차악도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점차 ‘나쁨’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덧 상식이 뒤집히고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조차 어려워진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도마뱀이 지배하는 행성처럼 말이다.

2022년 대선은 아마도 유권자들의 내적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선거였을 것이다. 배우자 논란과 사법 리스크, 온갖 네거티브가 난무해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불렸을 정도다. 그 뒤로도 국민들 마음은 편할 날이 없었다. ‘정치 초짜’ 대통령은 이상은 높았지만 ‘불통의 정치’로 기대를 저버렸다.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과 글로벌 중추 국가 도약이라는 웅대한 목표는 한낱 신기루가 됐다. 국회는 더 난장판이었다. 거대 야당은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포퓰리즘 입법 폭주를 일삼았다. 민생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2024년 12월 3일이 왔다. 국회 때문에 뭘 못하겠다며 대통령이 돌연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계엄·탄핵 정국의 소용돌이는 ‘경제 선진국’의 그늘에 가려졌던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허약한 민주·법치 질서, 뿌리 깊은 분열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허술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망가진 경제의 실질적 피해, 그리고 부끄러움은 모두 국민들의 몫이 됐다.



하지만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국민들은 뒷전이고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골몰하는 정치인들에게 행정·입법 권력을 안겨준 것이 국민들이니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바버라 켈러먼 교수는 “추종자 없이는 리더십이 없고 나쁜 추종자 없이는 나쁜 리더도 없다”고 했다. 권력의 일탈과 도덕적 흠결에 눈을 감고, 혐오와 불신에 굴복하고, 그도 아니면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상식과 질서가 무너진 ‘비정상’에 점차 익숙해진 결과가 오늘날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이제 다시 선택의 시간이 시작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때를 기다리던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경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글로벌 관세 전쟁의 직격탄에 올해 1% 성장률도 위태롭다. 저출산·고령화와 성장 동력 약화로 장기적 전망도 암울하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안보의 근간인 한미 동맹도 불안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로 한국을 압박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윤 전 대통령의 ‘탄핵의 강’을 건너는 동안 국론은 분열되고 국정 시스템과 사법·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이 모든 것이 차기 국가 지도자가 풀어가야 할 과제다. 통상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 동력을 재점화해 경제 활력을 되찾을 리더가 절실하다. 또 국가 안보 태세를 재확립하고 갈등의 정치를 종식시켜 국력을 모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나라 안팎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대선이다. 엄격한 잣대로 국난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갖춘 지도자를 뽑는 것이 유권자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무다. 또 한 번의 리더십 실패는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우리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차악’이 아닌 ‘좋은’ 지도자를 가려내기 위해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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