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대회 중의 메이저라는 마스터스의 고정 개최지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은 잘 꾸며진 드라마 세트장 같다. 코스의 잔디가 자로 잰 것보다 더 균일해 보이고 그린 빠르기는 잘 알려졌듯 유리판 자체다. 통풍과 습기 제거를 돕는 장치인 그린 하부의 서브에어 시스템 덕에 날씨에 관계없이 최적의 토양층이 유지되고 그린 스피드를 높이는 것도 그만큼 수월하다. 페어웨이와 그린 등 코스 안뿐 아니라 클럽하우스 주변과 연습장의 잔디까지도 오차 없는 길이와 상태를 자랑해 감탄을 금하기 어렵다.
마스터스가 ‘디테일 끝판왕’인 또 다른 이유는 색(色)이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는 많은 비가 내렸던 연습 라운드 첫째 날을 지나고 9일(이하 한국 시간)과 10일 연속으로 티 없이 맑은 날씨를 맞으면서 마스터스 고유의 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티잉 구역과 페어웨이 잔디는 버뮤다그래스인데 가을마다 라이그래스로 오버시딩(덧파종)해 초록빛이 유독 뚜렷하다. 코스는 굴곡이 아주 심하다. 그래서 비 예보가 있으면 위험해 보이는 구역에 곧바로 미끄럼 방지용 자갈이 깔린다. 자갈 색깔 역시 잔디와 구분이 어려운 초록이다.
마스터스에서 초록과 앙상블을 이루는 빛깔은 하양이다. 캐디용 흰색 점프수트는 옷 위의 초록색 숫자(대회 현장 등록 순서대로 숫자를 부여한다), 선수 이름표 등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또 코스에 산딸나무가 많은데 흰 꽃이 이 시기에 만개한다.
벙커도 흰색에 가깝다. 가까이서 보면 미색이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하면 눈 같은 하양이다. 깊은 초록의 페어웨이와 눈부신 하양의 벙커, 그리고 그 위에 역시 초록과 하양의 조합으로 서 있는 캐디의 모습은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그림이다. 관람객들은 카메라 사용이 허용되는 마지막 날인 10일 초록과 하양의 앙상블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람객의 90% 정도는 ‘마스터스 굿즈’를 하나 이상은 착용하고 있는데, 이곳의 기념품 매장에서 파는 모자와 옷 등은 죄다 밝은 계열이라 코스를 걸어 다닐 때 가장 잘 어울리도록 계산된 듯하다.
코스 내 벙커는 전체 44개다. 32개는 그린사이드에, 12개는 페어웨이에 있다. 벙커가 아예 없는 홀은 14번 하나다. 이들 벙커가 하양으로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벙커를 채운 모래가 실제로는 모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규산염 광물인 ‘스프루스파인 석영’의 알갱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핵심 소재도 이 석영으로 만든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파인 지역의 광산에서 나오는 톤당 1만 달러 안팎의 순도 높은 석영만 오거스타내셔널 벙커에 쓰인다.
관련기사
전설의 골퍼 보비 존스와 설계가 앨리스터 매켄지의 협업으로 탄생해 1934년부터 줄곧 마스터스를 열어온 오거스타내셔널은 1975년부터 쭉 고순도 석영으로 벙커를 채워왔다. 2012년에 한 관람객이 기념으로 벙커 모래를 한 컵 담아가다가 체포되고 벌금 2만 달러까지 낸 소동도 있었다. 올해 개막해 화제가 된 스크린골프리그 TGL도 벙커에 이 ‘모래’를 쓴다.
검게 보이는 연못에 코스 풍경이 멋들어지게 반영되는 모습도 마스터스를 상징한다. 과거 한 기자가 15번 홀 그린 앞 연못의 물을 떠 실험한 결과 식용색소 성분이 검출됐다고 한다. 페어웨이 등에 원하는 초록빛이 나오지 않으면 대회 전 페인트를 쓴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코스 폭이 실제보다 좁아 보이도록 페어웨이의 잔디를 티잉 구역 방향으로 깎고 키 큰 나무들이 페어웨이 쪽으로 가지를 드리우게 했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 영향에 코스 내 나무 10여 그루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단시간 내 정상 경기가 가능하도록 복구한 것만 해도 놀랍다는 평가다.
마스터스가 연출한 색의 향연은 올해 초대받은 95명의 선수만을 위한 골프 이상향의 완성이다. 영화 ‘트루먼쇼’의 골프 버전 같다. 다만 영화 속 주인공이 탈출을 꿈꾼 것과 반대로 오거스타내셔널은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대회 기간 나무 사이에 스피커를 보이지 않게 설치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연출한다는 소문도 한때 있었다. 오거스타내셔널 측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수상한 낌새를 찾아다녔던 것처럼 코스 내 나무들을 나름대로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이상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