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 관세정책과 관련해 예측 불허의 행보를 보이고 미국과 중국 간 치킨게임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중국을 제외한 주요 교역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 등 57개 무역 파트너에 대해 상호관세를 부과한 지 불과 13시간 만의 후퇴다. 대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로 급격히 올렸다. 무역 전쟁 발발에 미국 주식·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자국 내 비판 여론이 커지자 관세 전선을 중국으로 좁혀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84%로 올리고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는 등 맞불 전략으로 미국에 대해 전면적 보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번 유예 조치는 우리 경제에 일단 긍정적이지만 6·3 조기 대선 이후까지 협상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 등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거론하며 “무역 협상에서 한 개의 패키지로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관세, 조선·에너지 협력,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비 분담금 등 무역·안보 이슈를 포괄 협상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하지만 임기가 약 2개월 남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은 다른 나라의 협력이 동반돼야 해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된다. 문제는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대미 협상 타결이 늦어질수록 우리 경제의 피해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국이 대미 최대 투자국이자 일자리 창출국임을 내세워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차기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패키지 딜’에 나설 때를 대비해 긴 호흡의 범정부적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선·에너지·원자력·방산 등 한미 간 ‘윈윈’ 산업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의제별로 촘촘한 협상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여야와 정부는 민간 기업을 포함한 초정파적 컨트롤타워를 가동하고 협상의 큰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초당적인 지지를 통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적극적 대미 협상을 통해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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