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폭탄을 투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은 항공기의 지상공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폭격의 공포에 시달리던 세계 각국 정부·군 지도자들은 지하 수십m 지점에 콘크리트 벙커를 만들어 은신했다. 일반적인 폭탄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지하벙커는 세계 최고의 공군력을 지닌 미국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였다.
당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이오지마 전투를 그린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에서는 미국 전함과 폭격기들이 일본군 지하 터널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지만 터널에 숨어있는 일본군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지하 벙커에 숨어있던 일본군 2만여 명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 미 해병대는 한 달여 동안 2만 8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은 이오지마처럼 지하 깊숙한 곳에 설치된 적 군사시설이나 튼튼한 요새를 파괴하려면 고(高)위력의 초대형폭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냉전 시대 전술핵무기에 치중하면서 이 같은 폭탄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군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 전쟁 지휘소를 비롯한 핵심 군사시설들을 지하에 건설해 다국적군은 압도적인 공군력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았고, 다급해진 미 공군은 육군의 8인치 곡사포 포신을 활용해 지하시설 파괴용 폭탄을 만들어 이라크군 지휘시설을 성공적으로 공습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이 때 지하벙커를 파괴하고자 개발된 폭탄이 바로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라 불리는 ‘GBU-28’이다.
미 육군에서 쓰던 8인치 야포의 포신을 활용해 2주 만에 ‘BLU-113’ 벙커버스터 폭탄을 만들었다. 이후 GBU-28로 이름이 바뀐 286㎏의 고성능 폭약에 레이저 유도 장치를 추가, 파괴력과 정확도를 높인 2.1t짜리 벙커버스터로 탄생했다. 탄두가 지상에서 곧바로 터지지 않고 지하 30.5m(콘크리트 6m)를 뚫고 들어가 폭발하도록 설계됐다. 1991년 2월 말 바그다드 외곽의 공군기지에 위치한 이라크군 지휘시설 공격에 처음 사용됐다.
우리 군도 2010~2014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GBU-28을 도입했다. 2014년 1월 방위사업청은 우리 군에 벙커버스터 150기를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F-15K 전투기에 장착해 유사시 북한의 핵시설과 동굴속 장사정포, 지하군사시설 등을 격파할 계획이다. GBU-28 폭탄의 제원은 길이 3.8m, 지름 36.8㎝, 무게 2250㎏에 이른다. 최대 사거리는 24㎞다.
레이저유도장치와 고성능 폭약을 활용해 적 지하시설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전투기가 지하 시설이 위치한 장소를 적외선 레이저로 비추면 레이저가 전투기로 반사된다. 전투기 조종사는 반사된 빛을 이용해 GBU-28을 목표 지점으로 유도한다. 폭탄이 땅에 닿으면 지상에서 바로 터지지 않고 지하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한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명중률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미국은 이런 GBU-28의 단점을 위성항법장치(GPS)와 관성항법장치(INS)를 결합해 보완한 ‘GBU-37’을 1997년 개발했다. 날씨 변화에 따라 사용에 제약이 있는 GBU-28과 달리 악천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B-2 폭격기에 장착되고 최대 사거리는 10㎞다.
2001년 아프간전쟁 당시 미군은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만든 지하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수도 카불과 칸다하르 등지에 벙커버스터를 투하했다. 2003년 이라크전 때는 GBU-37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해 바그다드에서 개전 후 가장 강력한 폭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 공군의 공습에도 이라크군 지하시설 중 일부가 살아남으면서 새로운 폭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2010년 개발된 무기가 ‘GBU-57’이다. 미군이 보유한 재래식 폭탄 최강자라는 GBU-57 ‘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는 무게 14t, 길이 5.2m라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이용해 지하 100m(콘크리트는 60m)를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GBU-57은 스텔스 폭격기 B-2에만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략폭격기 B-52H나 B-1B로 공습하려면 적 방공망을 사전에 제압해야 하므로 기습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갖춘 B-2는 적 지하시설 인근까지 안전하게 침투해 투하할 수 있어 기습 작전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B-2에 GBU-57을 탑재해 북한으로 침투시킨다면 표적이 된 북한 지하 군사시설은 사전 징후를 알아차리기 전에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최근 미 공군이 3대의 B-2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북한을 겨냥하는 차원에서 GBU-57도 괌에 함께 배치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을 발동하면 괌 앤더슨 공군기지나 미국 본토 주둔 B-2에 GBU-57을 탑재해 북한 지도부가 은신한 지하벙커를 타격해 적 전쟁지휘능력을 마비시키는 참수작전을 감행할 것으로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동굴파괴용이 아니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벙커버스터급 폭탄도 있다. 2017년 4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낭가르하르주 동굴지대에 처음으로 실전 투하한 초대형 폭탄 ‘GBU-43/B 모아브(MOAB·공중폭발대형폭탄)’다. 동굴 깊은 곳에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했다. 전술핵 못지않은 위력의 GBU-43은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데, 당시까지 비핵폭탄 중 가장 강력했다. 폭발 반경 1.6㎞,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반경만 300~500m다.
암모늄 질산염이 공기와 결합해 폭발하면서 반경 550m를 무산소 상태로 만들어 초토화시킨다. 폭발 때 발생하는 열 압력이 지하 60m 터널과 건물을 모두 붕괴시킨다. 약 2만 2000파운드(10t) 무게에 길이가 6m에 달하는 GBU-43/B는 1만 8700 파운드 폭발력을 지녔다. 미군의 GBU-57보단 작지만 GBU-43/B가 탄두와 폭발력이 더 커 가장 강력한 재래식 무기로 손꼽힌다.
참고로 러시아는 ‘폭탄의 어머니’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초대형 재래식 폭탄 ATBIP를 만들었다. 미국 GBU-43의 4배에 달하는 폭발력 때문에 ‘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