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대통령 관저에서 퇴거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정치적 행보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이날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자택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재입주했다.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린 지 7일 만, 관저 생활을 시작한 지 886일 만이다.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진은 관저를 찾아 배웅했다. 윤 전 대통령은 수석 이상 고위 참모들과 약 20분간 가진 대화에서 “임기를 끝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후 관저 잔디밭에서 비서관·행정관급 참모들 200여 명과 함께 환송 행사도 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참모진에 “비상조치(12·3 비상계엄) 이후 미래 세대가 엄중한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돼 다행”이라며 눈물을 보이는 직원들에게 “그만 울고 자유와 번영을 위해 더욱 힘써달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영원한 나의 대통령, 따뜻한 리더 윤석열’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은 사저로 되돌아가는 도중 차량에서 내려 관저 정문 앞에 모인 지지층과 인사를 나눴다. 윤 전 대통령은 대학생 지지층과 포옹을 했고 펜스 밖에 있는 지지층과 악수를 나누며 주먹을 쥐어 올리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사저에 도착해서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윤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밝은 웃음과 함께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서면 메시지도 내놓았다. 그는 “지난겨울에는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셨다”며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대통령경호처는 40명 안팎의 전담 경호부를 구성해 즉시 경호에 들어갔다. 윤 전 대통령은 향후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길 가능성이 작지 않다. 11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기에 주상복합은 적절하지 않고 향후 시위·집회 개최로 인한 주민 피해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벌써 주민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크로비스타에 거주하는 60대 A 씨는 “시위대가 몰려와 시끄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주민 대부분이 별로 반기지 않는다”면서 “아이들도 다니는데 욕설 등 이상한 구호가 나올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윤 전 대통령은 당분간 사법 리스크 대응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14일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의 첫 정식 공판이 있고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맞물려 윤 전 대통령의 사후 정치 가능성도 높게 내다보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 이튿날이던 5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관저로 불러 대선 출마를 권유했고 대선 주자인 이철우 경북지사도 만났다. 탄핵 반대파의 지지가 필요한 대선 주자들과 잇단 회동을 가지며 윤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를 가져가려 할 수 있다.
다만 영향력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대선 개최에 원죄를 가진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국민적 반감을 키우며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의 막후 정치는 진영 전체에 도움이 안 된다”며 “자중자애하시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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