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외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 데 이어 반도체 제조 장비와 메모리 칩,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은 11일 중국산을 포함한 20개 주요 전자제품이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미국 내 아이폰의 가격 폭등 우려가 커지는 등 무차별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까지 뒤흔들 조짐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술(IT) 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도 잠시 숨을 고르며 대미 통상 협상 전략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게 됐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과 방심은 금물이다. 백악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를 곧(14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언급해온 만큼 이 법에 따라 25% 관세를 매긴 자동차·철강처럼 반도체에도 고율의 품목 관세를 물릴 가능성이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13일 품목별 관세 발표 시점에 대해 “(상호관세에서 빠진 전자제품은) 아마 한 달 정도 후에 적용될 반도체 관세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관세 변덕’에 통상·경기 대응책을 세우기도 쉽지 않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전 세계 금융·외환 시장은 연일 요동치고 글로벌 경기는 침체 기로에 놓였다. 서로를 겨냥해 각각 145%, 125%의 초고율 관세 폭탄을 터뜨리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의 향방도 오리무중이다.
글로벌 경제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국의 오락가락 통상 정책에 치밀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외부 변수를 극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우선 우리의 대미 수출이 미국의 제조업 성장과 직결된다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에 알려 설득하고 조선·에너지·반도체 등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산업 협력을 매개 삼아 관세 충격을 줄여야 할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 물량이 한국에 몰려들지 못하도록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또 반도체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전략산업의 초격차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컨트롤타워를 실시간으로 가동하고 민관정이 원팀이 돼 정교하게 총력 대응해야 관세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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