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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제조업은 안보·혁신·일자리의 근간…적극적 산업정책 펴야”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트럼프 관세전쟁 의도는 무역 재조정, 제조업 부흥

규제완화로 기업환경 개선하고 기술·인재 지원해야

美 관세·안보 포괄협상 요구, 시나리오별 철저 대비

한미 산업 협력 강화를 경쟁력 제고 기회로 삼아야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다른 선진국처럼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면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본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보호무역 장벽을 치고 자국의 첨단 전략산업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제조업 기반 수출 경제인 한국이 큰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요 선진국들은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육성, 국가 안보 등 다양한 이유로 제조업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도 제조업의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주52시간 예외 적용 등 규제 완화, 연구개발(R&D) 지원, 인재 양성과 유치 등을 통해 우리의 주력 전략산업 우위를 유지하고 대체 불가능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대미 통상 전략에 대해 “민간 기업과 함께 에너지·조선을 포함한 산업 협력 패키지 등 만반의 시나리오를 준비한 뒤 협상 타결의 적기를 찾아야 한다”며 “이를 우리 제조업의 체질 개선과 기술 경쟁력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의도는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가 자유무역 질서에 무임승차해 미국 경제를 이용해왔다고 보고 무역 관계를 재조정하려 하고 있다. 다음은 미국 제조업 부흥이다. 또 관세를 높여 대규모 감세를 위한 다른 세수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의 설계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관세를 통해 1년에 6000억 달러, 10년이면 6조 달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 효과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세계의 중심이 돼 있다.

-미국이 부과한 고율 관세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지금은 협상 개시를 위한 출발선에 선 단계이다.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개별 협상에 따라 일정 정도 관세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구체적인 관세 인하율이나 시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 영향이나 정치적 동향, 상대 국가의 효과적인 패키지 딜 제시나 보복 대응 여부 등에 좌우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 전쟁의 치킨게임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언제 협상을 시도할지는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두 스트롱맨에 달려 있다.

-상호관세 말고 미국의 관세정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관세가 부과된 품목들이다.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이미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구리·목재·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 품목들은 미국이 핵심 산업의 공급망 내재화 전략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관세와 달리 협상의 여지가 적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이다. 상호관세 협상을 하는 동시에 큰 그림을 가지고 232조에 대응해야 한다.

-대미 통상 협상의 기본 전략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베트남·인도 등 다른 나라들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를 내리겠다고 협상한다. 반면 우리는 이미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거의 제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미국의 제조업 부활과 공급망 구축에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임을 내세워야 한다. 에너지·조선은 물론 원전이나 전력 관련 인프라 분야에서도 미국 진출이나 한미 협력을 강화할 여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관세, 산업 협력, 방위비 분담금 등을 일괄 협상하자고 하고 있다.

△일단 미국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하면서 우리로서는 종합 패키지를 정교하게 마련할 시간을 벌게 됐다. 관세의 경우 가능하면 에너지·조선 등 경제 분야 패키지 내에서 적절한 시기에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까지 협상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더 고도의 전략적 대응을 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방위비 분담금은 증액 규모에만 초점을 맞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확장 억제 전략,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한미 안보 협력의 주요 이슈들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협상 타결 시기를 차기 정부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도 한국과 미국이 별도 팀을 구성해 최소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협의했다. 안보와 경제 등 다른 성격의 분야가 연계될수록 의사 결정이 힘들고 이를 조정하려면 많은 시간과 정치적 에너지를 써야 한다. 다만 협상은 진공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정치·외교·경제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방위비와 안보 현안, 관세 등의 경제 패키지를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 양자 협상을 이어가며 우리 측 카드를 준비하되 결국 최종 타결은 차기 정부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안보, 농민들의 반발 등을 고려할 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까지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했는데.



△USTR 국가별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보면 한국 관련 내용은 7쪽으로 일본, 유럽연합(EU) 등에 비해서 분량이 적다. 이 가운데 미국이 진짜로 필요한 분야와 우리가 제도 개선 및 투명성 제고 등을 통해 대안을 검토할 수 있는 분야 등 교집합을 찾아 우선순위를 가려 협상해야 할 것이다.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협상 때도 미국은 50개 가까운 이슈들을 제기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5~6개 정도의 이슈를 놓고 협상을 타결했다.

-미중 관세 전쟁이 전면적으로 격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총 38%에 이른다. 미국은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고 중국은 이에 대응해 핵심 광물 등 수출 통제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로 수출은 물론 투자·교역 등을 전반적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교역 다변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끝나도 보호무역주의가 유지될 것으로 보는가.

△규범에 기반한 다자 자유무역 체제가 아니라 힘에 기반한 관리무역 체제로 가고 있는 중이다. 통상의 역사를 보면 한 번 흐름이 바뀌면 30년은 지속된다. 과거 20세기 초 보호무역주의, 그 후 자유화와 세계화도 마찬가지였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중국에 대한 301조 관세, 철강에 대한 25% 관세 등 트럼프 1기의 통상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비 경제나 금융 경제가 아니라 제조업 경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온쇼어링(자국 내 해외 공장 유치)’ 전략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프렌드 쇼어링(우방 간 공급망 구축)’ 정책과 차이를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위해 소재·부품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늘어난 수출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나바로 고문은 “독일·일본과 한국이 이 나라를 제조 국가에서 조립 국가로 만들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소재와 부품도 미국산을 쓰던가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단순 비용 절감, 가격 인하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조정 등을 통해 기술에 기반해 제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진짜 혁신은 제조 현장에서 나온다. 제조업은 네트워크, 시너지 효과 등을 갖고 있어 코딩이나 디자인도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잘한다. 특히 지정학적 불확실성 시대를 맞아 제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여러 이유로 전략산업 지원에 소극적인데 그럴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는 반도체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우위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

-주요국들의 전략산업 유치 경쟁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미 그린필드(생산 시설 설립) 투자는 2023년, 2024년 2년 연속 1위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앞으로 해외 투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맞아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미중 관세 전쟁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중국은 중요한 교역국으로 상호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과 전략 경쟁을 하며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중 간 발생할 수 있는 통상 현안에 대해 잘 관리해나가야 한다. 중국의 대외무역 흑자 규모는 지난해 1조 달러에 육박했다. 미국 시장 진입이 막힌 중국 상품들이 밀려들면서 제3국이나 국내시장에서 우리와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중국과는 복합적 통상 관계에 따른 협력과 리스크 관리를 잘해야 할 것이다.

◆She is…

1967년 울산에서 태어나 정신여고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통상 분야에서 실전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 외교통상부 FTA정책과장,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 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FTA 개정 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트럼프 1기 행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이끌었고 이후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역임했다. 산업부 사상 첫 여성 국장·1급·차관급 자리에 올라 ‘유리 천장’을 깬 인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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