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20주년을 맞은 고려대가 세계 30위권 명문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취임한 후 2년간 확보한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학술·연구 역량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이념으로 출발한 고려대가 이제는 세계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역할에 앞장서야 한다는 김 총장의 철학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김 총장은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SK미래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임 이후 지난 2년간은 도약을 위해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며 “120주년을 단순한 기념 잔치로 끝내지 않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퀀텀점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고려대 1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학술 분야에만 총 1208억 원을 투자해 연구 역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인공지능(AI)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고 학내 시설을 보수하는 작업에도 약 5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해외 연구자들과의 교류는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 부상하기 위한 필수 과제라는 것이 김 총장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에는 ‘제9회 넥스트 인텔리전스 포럼’이 열린다. 100여 명의 글로벌 석학이 참여 중인 ‘K클럽 월드 컨퍼런스’도 7월 개최될 예정이다.
첨단 분야 인력 유치를 위해 조성된 연구 우수 기금을 활용해 120명의 교원도 신규 임용했다. 김 총장은 “사회가 요구하는 첨단 분야 인력을 적극 초빙하는 한편 예일대·베이징대를 비롯한 세계 정상급 대학들과의 교류도 폭넓게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캠퍼스 인프라 개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고려대는 올해 중앙 광장, 인문관, 자연계 연구동 등의 신축을 시작한다. 이 밖에 사범대·정경대·고시동을 포함한 10여 개 건물은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올 2월에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4대를 앞세운 ‘인공지능(AI) 컴퓨팅 센터’를 출범했다. 이달 ‘정운오 IT 교양관’을 신설하기도 했다. 김 총장은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향상시켜 미래 교육과 연구의 경쟁력을 높였다”며 “교수·직원·학생들의 헌신과 후원자들의 든든한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의 이 같은 투자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고려대가 발표한 논문 수는 7710개를 기록해 전년 대비 16.2% 늘었다. 같은 기간 논문의 질을 뜻하는 인용 횟수도 7.5% 증가했다. 줄곧 30% 내외에 머물렀던 국제 협력 연구 비율은 현재 38.7%에 달한다.
재정 기반 개선이 이 같은 변화로 이어졌다. 고려대는 지난 2년간 역대 최대 규모인 약 2500억 원의 기부금을 유치했다. 지난해 고려대 전체 예산은 1조 7595억 원으로 2년 전 대비 19% 증가했다. 올 1월 고려대가 등록금을 5.0% 인상하기로 결정한 만큼 향후 재정 여력이 더욱 확충될 전망이다. 김 총장은 “투자할 여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대학이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는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4년의 총장 임기 반환점을 돈 그는 향후 고려대가 사회적 문제 해결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사회를 떠난 대학은 있을 수 없다”면서 “고려대는 앞으로도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민족을 넘어 인류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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