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서 ‘반미 연대’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은 실리를 따지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줄타기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15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팜민찐 총리 등을 만나 “일방적인 괴롭힘에 함께 반대하자”며 미국을 겨냥한 공동 대응을 제안했다. 시 주석은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을 순방 중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12월 이후 1년 만의 재방문이며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는 각각 9년, 12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에 맞서 협력 전선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AP통신은 이번 순방이 애초 계획된 일정이었지만 미중 무역 갈등의 격화로 인해 더욱 전략적 의미를 띠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시 주석의 ‘항미 연대’ 구상에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베트남은 시 주석의 ‘항미 연대’ 발언을 공동 발표문에서 뺐고 남중국해 문제와 무역 불균형 해소 같은 양자 현안에 집중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와 함께 미국과의 안보·무역 관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630억 달러의 적자를 낸 반면 미국과는 12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베트남에 46%에 달하는 고율의 상호관세를 예고했으며 현재 90일간 유예 중이다.
말레이시아도 상황이 비슷하다.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지만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캄보디아 역시 중국으로부터 해군기지 건설 자금을 지원받은 대표적 친중 국가이지만 수출의 약 25%가 미국에 집중돼 있다. 상호관세 협상을 앞둔 만큼 시 주석의 방문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 이언 총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접근 방식은 중간에 낀 동남아 국가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디언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편을 들지 않으려 노력해왔다며 이번 관세 전쟁에서도 두 국가 중 한쪽과 적대적 관계를 맺는 상황은 피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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