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정준영 법원장)이 기업 회생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제도를 도입한다. 오는 5월 1일부터 '프리 ARS(Pre-ARS)' 제도와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방식을 국내 회생법원 중 최초로 시행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16일 대회의실에서 기업회생 제도 개선 설명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정준영 법원장과 양민호 수석부장판사, 이여진 법인회생총괄부장판사, 황성민 법인회생부장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설명회에서는 새 제도의 배경과 기대효과가 상세히 소개됐다.
'프리 ARS'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어려움이 예상되는 기업이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기 전에 법원의 조정 절차를 이용해 주요 채권자들과 채무를 조정하거나 구조조정에 관한 협상을 하는 예방적 구조조정 제도다. 기존 ARS 제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회생 절차 신청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성민 판사는 "기업이 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되면 낙인 효과, 근로자 사기 저하, 거래처 및 고객 이탈 문제로 이어져 종전 사업을 정상적으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진다"며 "이 때문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라도 회생 절차 신청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 회생이 가능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 ARS 제도는 특히 비공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강점이다. 사건 접수부터 절차 진행 과정이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무를 운영함으로써 기업의 낙인 효과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또한 회생 절차가 아니므로 계약상 기한의 이익 상실이 발생하지 않아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다.
또한 서울회생법원은 프리 ARS에서 협상이 불발되거나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방식도 함께 도입한다. 이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워크아웃 공동관리 절차와 채무자회생법상 회생 절차를 결합하여 진행하는 구조조정 방식이다.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은 기업이 워크아웃과 ARS 회생 절차를 동시에 신청하면, 법원이 포괄적 금지명령을 발령하여 강제집행의 위험 없이 채권자들 간 워크아웃 협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상적인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포괄 허가를 내리는 방식이다. 법원은 최장 3개월간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보류할 수 있어, 워크아웃 절차의 진행을 최대한 보장한다.
정준영 법원장은 "우리 법원이 시도하는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의 다양한 정상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워크아웃과 회생 절차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결합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사전 협상 기반 구조조정은 주요 기업 회생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제너럴 모터스(GM)의 파산법 제11장 신청 사건도 신청일 이전에 채무자와 채권자들, 이해관계인들, 금융 당국 등이 TF를 구성해 채무 조정과 구조조정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던 사례가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 제도 도입을 위해 사전 구조조정 제도에 관한 내부 연구회를 열고 판사들 간의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앞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실무 적용 가능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4월 말에는 '도산법연구회'를 열어 제도적 기반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는 한편, 구조조정 시장의 조언을 수렴하고 금융위원회 등 관계 당국과의 협력도 병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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