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관련해 공개 협상에 나선 70여 개국 중 첫 주자로 관심을 모은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주일미군 주둔 비용 부담 증액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무역적자 해소라는 세 가지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방위비를 관세 문제와 연계하려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관세 협상과 안보 이슈는 별개라는 입장을 드러내면서 양측이 원했던 협상 조기 타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8일 아사히신문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일본 측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회담하면서 주일미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일본 측의 부담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관세 협상을 안보와 분리한다는 방침 하에 방위성 간부를 따로 파견하지 않았다. 협상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안보 문제가 나오면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답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미국산 자동차 판매 대수가 적다는 점, 미국의 무역적자가 크다는 점도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제시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경제산업성 간부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각료급 협의에서도 구체적인 요구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각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율 발표 때 자동차 부문을 언급하며 한국과 일본을 싸잡아 공개 비난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는 자동차의 81%가 한국산이고 일본에서는 94%가 일본산”이라며 미국에서는 100만 대의 외제차를 판매하고 있고 어떤 미국 기업도 다른 나라에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미 관세 협상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주목받은 미일 교섭은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나오지 않은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등판해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하면서 ‘조기 타결’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요미우리는 “이번 협상에서 미국 요구를 파악해 향후 교섭 수단으로 검토한다는 일본 정부의 전략이 첫판부터 꺾인 모양새가 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제기를 하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협상에서 거론하겠다고 밝힌 환율 문제는 4월 하순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닛케이는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이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달 하순 미국을 방문하는 데 맞춰 베선트 장관과 회담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관세를 둘러싼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본에서는 연내 금리 인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다음 금리 인상 시점을 올 7월에서 내년 1월로 연기하면서 “2025년 중에는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2027년 3월까지의 금리 인상 횟수도 2회에서 1회로 하향 조정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관세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면서도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연내 인상 불가로 기울고 있다. 일각에서는 “엔저를 문제 삼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염두에 두고 대외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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