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사법연수원 18기)은 1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대안논증 같은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안논증이란 ‘논리적 판단을 외면하고 특정 인물의 인격, 경력, 사상 등을 지적하면서 범하는 오류’를 뜻한다. 특히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내리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해야 대통령과 국회 사이 정치적 충돌에 따른 교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권한대행이 6년 동안의 재판관 임기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국회에 우회적으로 쓴소리를 던진 것은 사법부 판단에 대한 여야의 ‘편 가르기’식 비판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헌재가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자 국민의힘은 “헌재가 헌법상 정당한 권한 행사를 정략적으로 가로막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한 결과”라고 환영의 뜻을 보였다. 헌재가 앞서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자 민주당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냐”며 불만을 내비쳤다. 국민의힘이 “이변 없는 결과”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등 여야가 공수 교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근거는 없다. 양측이 각자 입맛에 맞으면 ‘옳은 판결’이고 아니면 ‘편향된 판결’이라는 식이다.
문제는 여야의 근거 없는 외침이 사법부의 신뢰 추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는 국민적 갈등이 확산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계산에 따른 발언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판결(判決)은 시비나 선·악을 판단해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어느 쪽이든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해 사법부에 던진 꼬인 실타래라면 더욱 그렇다. 스스로 풀지 못해 남에게 부탁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남 탓’만 하는 것은 초등학생 1·2학년이나 할 법한 일이다. 이게 ‘국내 정치의 현주소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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