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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역사와 주요 기능 [BOK 경제강좌]

배성종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조치 발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트럼프 풋과 함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가리켜 (Fed Put)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였다. 연준풋은 금융시장의 급격한 혼란이나 경제위기 시 연준이 개입하여 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신중한 기조로 연준풋에 대한 기대는 약화되었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대변해준다. 오늘날 중앙은행은 국가 경제의 안정적 운용을 뒷받침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역할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기능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점차 확대되고 진화해온 결과다.

중앙은행의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은 1668년 설립된 스웨덴의 릭스방크(Riksbank)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1694년 설립된 영국의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을 현대 중앙은행의 출발점으로 본다. 영란은행은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120만 파운드를 연 8%의 금리로 국왕의 전쟁자금으로 대여하고, 그 대가로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는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영란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이 점차 다른 민간은행의 지폐보다 더 큰 신뢰를 얻으며 널리 사용됨에 따라 민간은행들은 자체 발권을 중단하고 자금을 영란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844년 은행헌장법 제정으로 이어져, 영란은행은 공식적으로 발권 독점권을 부여받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전쟁과 기업 부도 등의 영향으로 은행 파산과 예금 인출 사태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권기관인 영란은행이 공공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으며, 결국 1866년 영란은행은 다른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자금을 공급하게 되면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기능을 처음 수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앙은행은 단순한 국고 대리기관을 넘어 은행의 은행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다.

중앙은행의 기능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이다. 당시 중앙은행들은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제한적으로 발행하는 금본위제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 위기 시에도 통화 공급을 자율적으로 늘릴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대량 실업과 소비 위축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통화정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으며, 세계 경제는 더욱 심각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깨달은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통화를 자율적으로 조절하여 경기 진작에 나섰다. 이후 중앙은행은 경기 안정, 물가 관리, 고용 촉진 등 거시경제를 조절하는 핵심 정책기관으로 기능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변화는 대공황 이후 확산된 케인즈이론의 영향 아래 더욱 가속화되었다. 케인즈이론은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에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의 재정지출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가 시급했던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고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정부의 재정정책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 시기에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보다 고용 창출과 산업 재건을 우선하고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정책을 운용하였다. .

1970년대에 접어들며 중앙은행의 역할은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이한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세계 경제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다. 기존의 케인즈이론에 기반한 정책 수단만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중앙은행이 통화를 지나치게 확대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시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단기적인 경기 대응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안정과 신뢰 확보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정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며 정책을 수행하는 중립적 정책기관으로서의 위상이 정립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앙은행의 기능이 다시 한번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물가는 비교적 안정된 상황이었으나 금융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중앙은행은 금리 조정 등 전통적 통화정책수단만으로는 이를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따라 양적완화 등 전통적이지 않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금융시장에 개입하였다. 또한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앙은행은 과도한 부채 누적 등 금융위기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위험요인을 미리 파악하고 억제하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까지 관리하는 기관으로 기능을 넓히게 되었다. 2020년 팬데믹 위기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자금을 공급하며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제를 폭넓게 지원하였다. 중앙은행은 단기 유동성 공급자를 넘어서 경제 전체의 신뢰를 지탱하는 최종 안전망으로 기능하였으며, 실물경제 충격에 대응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부의 재정 지원 기능, 금융시스템의 안정 유지,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용, 그리고 금융위기 대응 기능 등을 점진적으로 확보하며 발전해왔다. 오늘날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비롯해 경제 전반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기관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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