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서울가정법원에서 9년, 소년 판사로 수원지방법원에서 2년을 근무하면서 얻은 값진 교훈이다. 가사사건을 담당하다 보면 민사나 형사, 행정 사건을 담당할 때보다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기록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이 남 이야기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도 있는 일을 다루다 보니 당사자의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고 아파하며, 그 과정에서 인생을 배우게 된다.
이혼, 상속재산분할, 성년후견, 소년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소송, 비송 사건을 처리하면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이 두 감정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사건은 상속재산분할사건이다.
상속재산에 대한 다툼을 처리하다 보면, 처음에는 자녀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든다. 빚만 남긴 부모 때문에 상속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부모가 열심히 일하고 알뜰살뜰 아끼고 모아 남겨 주신 재산에 감사하기는커녕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자매와 반목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모습을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준비 없이 떠난 부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선 부모가 생전에 조금만 더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한 말을 해 주는 시간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 상속재산분할사건의 조정실에 들어가면 정말 사소하지만 수십년간 쌓인 한 맺힌 절규가 쏟아진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목말랐던 자녀의 아픔이 사건을 이렇게까지 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한 가지는 부모가 자녀들 간에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알았다면 떠나기 전에 법률적인 자문을 받아 어떻게든 준비를 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지금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녀들에게는 소송지옥이 열릴 수도 있고, 소송을 이겨서 재산을 얻더라도 남는 것은 남보다 못한 원수지간의 형제뿐이다. 상속재산에 대한 다툼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유언을 통해 재산 분배를 미리 정해 두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정작 유언을 남겨 두는 경우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유언을 남겨 두어도 법률상 요건 한두 가지가 누락되는 바람에 무효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누구나 인생에는 마지막이 있음을 알기에 그 마지막이 아름답게 장식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후에 남겨진 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지 못한다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만다. 나중에 자녀들에게 조금 더 남겨 주기 위해 골몰하기보다 오늘 내 자녀의 마음을 조금 더 살펴 주는 것, 그리고 사후의 분쟁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정혜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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