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정확한 정주 인구 파악을 위해 제2주소제(복수 주소제), 세컨드홈 등의 정책을 시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주요 대학이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고 장기 휴가가 발달한 유럽에서 제2 주소제를 채택한 국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일 독일 연방주민등록법(Bundesmeldegesetz)에 따르면 독일은 주 거주지와 부거주지를 모두 관할청에 신고해야 하는 제2 주소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 거주지’는 말 그대로 주로 이용하는 거주지이며 ‘부거주지’는 그 외의 모든 추가 거주지를 의미한다. 주 거주지는 주민의 생활 중심지 여부로 결정한다. 또 독일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부거주지 등록 주민에게 일종의 지방세인 ‘제2 거주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른바 제2 주택세다. 다만 지역별로 세금에 대한 다양한 예외 조항이 있어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처럼 조세 제도를 갖춘 덕에 독일의 제2 주소제는 지자체의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대학 도시, 휴양지처럼 단기 거주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제2 거주지세가 주 거주 인구를 늘리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대표적인 대학 도시인 아헨·뮌스터는 제2 거주지세를 도입한 해 인구가 각각 3.6%(2003년), 4.9%(2011년) 증가했다. 이는 제2 거주지세 납부를 피하기 위해 해당 도시를 주 거주지로 신고한 이들이 많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독일 외에도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 등이 제2 주소제와 제2 거주지세를 실시하고 있으며 선거권 등 법적 의무·권리는 주 거주지에서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제2 주소제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제2 주소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아울러 농촌 지역의 쇠퇴를 막기 위해 세컨드홈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세컨드홈을 일정 기간 임대하는 경우 주민세를 면제해주고 반대로 장기간 공실로 두면 주민세를 2~3배 더 걷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두 지역 거주 촉진을 위한 관련법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일본 각 기초자치단체는 두 지역 거주 촉진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지원 법인 및 협의회를 지정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방 주택 매입 시 1가구 1주택 특례와 제2 주소제의 연계를 추진하며 농어촌 특례 등 대입 입시 악용, 선거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의 공동대표인 허민 전남대 교수도 20일 “자식들을 농어촌에 주소지 옮겨놓고 대입 전형에서 농어촌 특례를 고르는 문제, 또 각종 선거에서 유권자의 대표성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함께 검토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역 정치권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자문위원회인 중장기전략위원회 등에서도 제2 주소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부작용 문제와 세금 납부 등의 논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인구감소지역 복수 주소제 도입의 가능성과 한계’ 보고서를 발표하고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개정해 인구감소지역 등에 한정한 ‘주민등록 특례’를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오랫동안 단수 주소제를 운영해온 만큼 전면적인 주소 제도의 변화보다는 복수 주소제를 시범 실시하는 등 점진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작용으로 △위장 전입 등 부정적 파생 효과 △지방 부동산 투기 △지역 활성화 한계 등을 지적했다.
지방세를 어느 주소지에 납부해야 하는지 등의 후속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전북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 등은 지방에 제2 주소지를 둘 경우 일정 부분 납세의 의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북연구원은 “지방세를 어디에 내야 할지 선택하는 제도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고향에 지방세를 내고 투표는 살고 있는 지역에 한다든지 등의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제2 주소지에 신고하고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행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을 경우 최소한의 납세 의무는 부과할 필요가 있다”며 “이로 인해 지역 경기 활성화, 지방 재정 확충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