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이 미국에 수십 년 동안 해온 학대(abuse)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 조작, 부가가치세 등 비관세장벽을 겨냥한 발언이다. 중국은 “어떤 국가가 중국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미국과의) 거래를 달성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각국에 중국과의 무역 제한을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공개 경고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주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둔 한국이 ‘넛크래커(중간에 낀 상태)’ 신세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해방의 날(4월 2일 상호관세 발표일) 선포 이후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과 기업 임원들이 관세 면제를 요청하며 나를 찾아왔다”며 “우리가 진지하다는 점을 알아봐 줘서 기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수십 년간의 (미국에 대한) 학대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우리는 위대한 우리나라의 부(Wealth)를 재건하고 진정한 상호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각국이 미국을 상대로 취한 대표적인 ‘비관세 부정행위’ 여덟 가지 유형도 소개했다. 첫 번째로 통화 조작(환율 조작을 의미)을 들었고 관세와 수출 보조금 역할을 하는 부가가치세, 원가보다 낮은 덤핑, 수출 보조금 및 정부 보조금을 적었다. 또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농업 기준과 기술 기준도 비관세장벽으로 꼽으면서 유럽연합(EU)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수입 금지 등을 지목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상무부는 21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입장문에서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훼손함으로써 이른바 ‘면제’를 받는 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는 것(與虎謀皮·무모한 일)이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국은 어떤 국가가 중국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미국과의) 거래를 달성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만약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대등하게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과 협상을 앞두고 있는 국가들에 섣부르게 미국 편에 서지 말라며 사전 경고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70여 개국과 관세 협상을 앞두고 중국의 제조 역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트럼프 관세를 우회할 방법을 원천 봉쇄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위급 고문들이 상대국 관세 협상 대표들에게 이른바 ‘2차 관세’를 꺼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특정 국가들에서 수입되는 상품들에 대해 금전적 제재를 가해 중국을 옥죄겠다는 의도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중국산 제품이 미국의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는 미미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측에 중국산 우회 수출을 막는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중국이 강력 반발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미중 사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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