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8시 17분. 누군가는 아침밥을 먹고 뉴스를 챙겨볼 시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다급한 소방 신고가 접수됐다. 갑작스레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옆집으로 옮겨붙고 있다는 전화였다. 아파트 옛 주민 60대 남성 A 씨가 일으킨 화재로 주민 6명이 다쳤다.
경찰은 방화 도구로 농약 분무기, 세차건 등으로 불리는 고압 분사기가 쓰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평범한 물건이 ‘묻지 마’에 가까운 방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화재로 인해 주민들은 잠을 자다, 밥을 먹다 연기를 흡입한 채로 소지품만 겨우 챙긴 채 집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외부 안테나를 붙잡고 4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한 경우도 있었다.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인 22일 오후 6시 20분께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마트에서는 30대 남성 B 씨가 환자복을 입은 채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B 씨는 마트에 있던 흉기 포장지를 뜯어 휘둘렀다. 사상자들은 B 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범죄의 여파로 인해 피해자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봉천동 아파트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은 피해 주민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고 일부 주민들도 임시 거처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집이 복구되기까지 걸릴 긴 시간이 걱정된다”고 했다. 징후도 없던 무차별적인 범죄로 인해 피해자뿐 아니라 지역사회까지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신림동·서현역 칼부림 사건과 올해 대전 초등학생 살인 사건, 미아동 흉기 난동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묻지 마 범죄의 해결책을 두고 사회적 안전망 마련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기동순찰대를 창설해 적극적인 범죄 예방에 나섰고, 묻지 마 범죄일 경우 처벌 수준을 높이는 법안이 21대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예기치 못한 공격으로 훼손된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 또한 중요한 의제다. 법무부가 범죄 피해자의 상담·심리 치유를 위한 스마일센터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서울 동부·서부센터 2개를 포함해 전국 16개소에 불과한 상황이다.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묻지 마 범죄’를 온전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심리적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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