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년 4월 23일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바이에른공국에서는 ‘맥주순수령’이라는 이름의 법령이 공포됐다. 바이에른공국의 통치자인 빌헬름 4세가 공포한 이 순수령은 맥주를 만들 때는 물·맥아·홉만을 재료로 써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이후 500년 넘게 독일 맥주 제조·판매의 기본 원칙으로 지켜졌다. 독일인들은 맥주순수령이 공포된 이날을 ‘맥주의 날’로 정해 기념해왔다.
올해 맥주의 날에 독일 맥주의 수난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가 발표됐다. 연방통계청이 발표한 맥주 산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 판매된 맥주는 67억 9300만 ℓ로 2014년 80억 600만 ℓ와 비교하면 15.1%나 감소했다. 독일은 일찍이 974년에 맥주가 언급된 역사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맥주의 종주국이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는 요즘 독일인들이 점차 술을 멀리하면서 독일 맥주 산업은 어느새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지난해 맥주 판매량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3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맥주 양조장 수도 2019년 1662개에서 지난해 1459개로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개시한 관세 전쟁이 독일 맥주 산업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달 초부터 모든 나라 수입품에 보편관세 10%가 적용돼 독일 맥주 수출도 직격탄을 맞았다. 캔에 담은 맥주의 경우에는 알루미늄 제품 관세 25%가 더 붙고 있다. 유럽연합(EU) 등에 대한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끝나는 7월부터는 관세가 더 추가될 수도 있다.
맥주의 날에 되레 우울한 풍경을 보여준 독일 맥주 산업의 침체는 내수 부진에 트럼프발 관세 폭격까지 겹쳐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소비 경기 침체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관세 폭탄 투하로 수출마저 휘청대고 있는 우리나라도 형편이 다르지 않다. 게다가 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3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소비 진작책을 찾아야 할 때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한미 2+2 통상 협의’ 등에 적극 임하되 속도를 내기보다는 우리 국익을 최대한 지키는 데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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