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을 관통하는 단어는 ‘K이니셔티브’다. 성장과 실용에 방점을 둔 국익 중심의 국정 운영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주도권을 쥐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중에서도 경제 분야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파트너십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주요 산업 생태계가 단순한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범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후보가 “경제 패러다임이 많이 변했다. 정부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며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겠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14일 이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현장 행보였던 AI칩 개발 스타트업 ‘퓨리오사AI’ 방문 일정에서 두드러졌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공언하고 한국형 챗GPT를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AI 기본 사회’ 공약을 내놓았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핵심 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소 5만 개 이상 확보하고 국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방안도 공개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내실 있게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진행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의 대담에서는 “AI 산업을 국가자본으로 투자해 그 지분을 확보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K엔비디아’ 육성을 위해 50조 원 규모의 국민·국부펀드 조성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강점이자 민주당의 약점으로 꼽혔던 국방 분야에서도 이 후보는 ‘K방산 육성’을 목표로 하는 성장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방산 수출 기업 연구개발(R&D) 투자 세액 감면 △방산 수출 컨트롤타워 신설 △대통령 주재 방산수출진흥전략회의 정례화 △방산 병역 특례 확대 등을 통해 우리나라를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는 “이를 위해서는 범정부적 지원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역별 공약에서도 성장 기조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반도를 권역별로 메가시티화(化) 해서 각 지역에 특화된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 해운, 광주 AI, 울산 미래차, 경북 2차전지 등의 산업 거점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분배가 아닌 성장에서 지역균형발전의 해답을 찾겠다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다.
이 후보가 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 경제 질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이 상호관세를 무기로 한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을 그저 기업과 지자체에만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전략 산업을 육성하고 인재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접근은 정부의 역할만 강조하기보다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나눠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에서다. 무엇보다도 AI를 비롯한 첨단산업은 기업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야인 만큼 이들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 완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첨단산업의 경우 국가가 갖고 있는 전문성이 기업보다 취약하지만 전폭적인 지원과 로드맵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정치와 기업의 선순환과 역할 분담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후보가 민감한 이슈에 ‘로키’ 전략을 보이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완화 공약을 내놓기는 했지만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원전과 관련해서도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예정에 없던 조기 대선에 서둘러 공약을 만들다 보니 ‘국가 주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재원 확보 면에서는 준비가 부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경선과는 달리 본선 경쟁이 본격화하면 이 후보가 각론을 구체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씻어낼 가능성은 높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우클릭’ 행보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희석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고 밝힌 것과 같이 전반적인 기업친화정책이 제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아직 당 차원의 공약이 나오기 전”이라며 “경선이 끝나고 경쟁 후보들의 공약들을 취합해 최종적으로 공약을 완성하는 절차가 남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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