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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의원입법 남발에 혁신 막혀…산업화 정책에서 교훈 얻어야”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전 KDI 원장)

경직된 노동시장·규제 환경에서는 생산성 제고 요원

성과 기반 보상 체계 확립해야 韓 경제 재도약 가능

70년대 중화학공업 발전 이끈 창의적 정책 돌아보고

법·제도 개선 통한 산업 진화 이뤄야 성장 동력 확보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이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과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한국 경제가 총체적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통상 전쟁으로 수출이 직격탄을 맞는 가운데 반도체 등 전략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생산성 하락으로 성장 잠재력도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과거 고성장의 동력이 됐던 혁신·도전의 기업가정신이 경직된 규제 사슬과 낡은 제도에 갇혀 쇠퇴하면서 경제 역동성은 약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은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면서 “1970~1980년대의 ‘공장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과거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창의적 정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파격적인 인재 유치 전략을 펴고 성과가 존중받는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다”면서 “기업과 시장에 부담을 주며 혁신을 가로막는 법·제도 기반을 정비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 전쟁으로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올해 경제성장률은 미중 통상 갈등 심화와 국내 정치 불안정성이라는 복합적 충격 속에 1%대 초반 내외에 그칠 것으로 본다. 6·3 대선을 계기로 정치적 불확실성은 해소 국면에 들어서겠지만 보호무역 확산과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심화로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구조적으로 미중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 서울대 경제안보 클러스터 연구에서 한국은 소재·부품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해 ‘수입 취약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분석됐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한국이 가장 심각한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도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다.

△KDI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현 2% 수준에서 2050년에 0.5%, 비관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0%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물론 향후 정책 선택과 제도적 대응에 따라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올리고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구조 개혁이 필수다. 대외 개방과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대외 개방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유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관세 전쟁에 따른 공급망 충격으로 중국에 진출했던 다국적 기업들이 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 등 새로운 아시아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FDI나 무역을 저해하는 규제들이 너무 많다.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경직된 노동시장과 열악한 기업 규제 환경은 지난 수년간 FDI가 저조해진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리쇼어링은커녕 국내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느라 미국으로 나가기 바쁜 와중에 외국자본도 끌어오지 못하면 산업 공동화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신생 기업을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중소기업 정책은 과도하게 ‘보호’ 중심으로 설계됐다. 헌법이 중소기업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했을 정도다.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50인 미만 소기업에 한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 우리는 300인 미만 중소·중견기업들에 동일한 지원을 한다. 이러니 기업들이 성장보다는 ‘기업 쪼개기’ 등으로 중소기업에 머무르려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한 것이다. 신용보증 지원도 스타트업보다 ‘늙은’ 중소기업들에 집중된다. 이렇게 연명하는 중소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임금 수준도 낮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하고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좀비 중소기업’ 확산 등 기업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기업 부채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2%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성장 제약 임계치인 90%를 크게 웃돈다. 6~30위권 중견 재벌 계열사 중에도 좀비기업이 22%에 달한다. 경쟁력은 없는데 부동산담보로 은행 빚을 연장하는 기업들이 누적되면 경제 전체의 활력이 잠식된다. 우리 경제가 원활한 신진대사를 하려면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를 줄이고 산업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부실채권 해소나 부채 조정을 조건으로 탄소 저감 설비투자, 에너지 효율 기술 도입을 의무화하는 ‘그린 전환’ 구조조정 방안을 도입한다면 기업의 지속 가능성 제고와 생산성 회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글로벌 교역 질서 재편으로 수출 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의 수출 주도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장 잠재력은 충분한데도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정책 환경이 제 역할을 못하는 탓에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등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역량과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오래된 전통 제조 중심에 머무느라 수출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수출 동력을 살리려면 기술과 서비스 융합을 통한 산업 진화가 이뤄지도록 제도적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 미국의 얼라이브코어는 과거 의료기기 제조사였지만 저가의 중국산 제품에 밀려 수출 경쟁력을 잃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 등을 결합하는 혁신을 거쳐 실시간 뇌졸중 진단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 위기를 돌파했다. 그 배경에는 원격의료를 수용한 미국의 유연한 규제 환경이 있었다. 한국의 화장품 산업도 2012년 원료에 대한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한 결과 수출과 생산이 크게 늘고 오늘날 ‘K뷰티’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헬스케어나 첨단 제조 분야에서도 유사한 규제 혁신이 이뤄졌다면 수출산업이 강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을 것이다.



-첨단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첨단산업의 경쟁력 저하는 인재 확보 실패에서 비롯됐다. AI·디지털 전환을 위한 고급 인재 유치는커녕 기존 인재들마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더 이상의 두뇌 유출을 막으려면 연봉과 연구비를 파격적으로 높여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유치·육성해야 한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당시 대학교수의 4배 수준의 높은 연봉과 주거 지원 등 파격적 처우로 박사 인력을 유치했던 경험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한국 중화학공업 육성은 그 기반에서 이뤄진 것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시대처럼 지역 국립대를 산업단지와 연계한 특성화 전략도 필요하다. 부산대(기계), 전남대(화학), 경북대(전자) 등의 모델을 현대화해 광주는 빅데이터, 대구·경북은 로봇, 부산은 모빌리티 등 AI 특화 연구를 유도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대전 AI 반도체 특화 산업단지와 연계해 산학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이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의원입법 품질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결국 실패했다. 차기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개혁은 무엇인가.

△법·제도 기반 정비, 특히 의원입법에 대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 십수 년간 의원입법 급증으로 규제 통제가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우리의 규제 환경은 여전히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의 의원발의 법안이 2만 5000건을 넘어 14대 국회에 비해 80배나 늘어났다. 전체 가결 법안의 95%가 의원입법인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충분한 법제 검토나 사전 규제영향평가 없이 통과돼 시장과 기업에 부담을 주고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혁신은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제도에서 좌절된다. 차기 정부는 ‘법의 질’ 제고를 경제 활성화와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어젠다를 제시한다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경직된 구조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청년 취업난 등 여러 문제를 초래한다. 반면 우수 인재가 공정한 보상을 받는 성과 중심 체계는 근로자 역량 개발과 기업 경쟁력,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연공성이 강한 한국에서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핵심 역량이 급락하는 반면 성과 중심 체계를 운영하는 스웨덴은 모든 연령대에서 고르게 높은 수준의 역량을 유지한다.

-노조의 반대로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우리 경제가 역동적으로 성장했던 1970~1980년대 중화학공업 성장의 배경에는 노사 협력 체제와 잘 작동하는 성과급 보상 체계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수출 기업이 품질 향상, 원가 절감 등의 성과를 낸 근로자들에게 보너스와 복지 혜택 등의 보상을 주도록 장려했다. 일명 ‘공장 새마을운동’이다. 정부가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니 기업은 정책에 협력하고 근로자는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 품질 향상에 자발적으로 기여했다. 노사 분규도 거의 없었다. 지금의 노사 갈등과 생산성 저하, 성장력 약화 등은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다. 성과 중심 보상 체계로의 전환 없이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샌디에이고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버지니아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재직하며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과 부원장, 14대 원장을 지내고 2024년 11월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으로 선임됐다.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재정경제2비서관,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박정희 정부의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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