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대를 만들고 지역·필수 의료 인력을 직접 양성하면 뇌졸중 분야 지원자가 늘어날까요?”
25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대한뇌졸중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만난 이경복 정책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공공의대 설립에 관해 의견을 묻자 이렇게 되물었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공공의대를 세우거나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유입될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비급여 영역으로 빠지지 않게 만들 안전장치 없이는 뇌졸중 등 지역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신경과는 의정갈등이 불거지기 전인 2023년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 전기모집에서 113.3%의 지원율을 기록했다. 이 교수 역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뇌졸중 진료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한해 10만 명 넘게 발생하는 급성 뇌졸중은 증상 발현 후 얼마나 빨리 재개통 치료를 시행했는 지에 따라 환자의 여생이 달라진다. 뇌졸중 의심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즉시 수술·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뇌졸중 전문의들에겐 밤낮없이 응급 콜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신경과 안에서도 보상은 적고 업무 강도가 높은 뇌졸중 전문의는 기피 분야가 됐다.
정부도 뇌졸중 대응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순천향대서울병원을 포함해 10곳을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했다. 이 교수는 "중앙-권역-지역으로 이어지는 심뇌혈관질환 대응체계가 마련된 것은 반갑다"면서도 "정작 이들 센터에서 일할 젊은 의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부산, 대구 등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에서는 정년을 바라보는 전문의들이 하루 건너 하루 '퐁당퐁당' 당직을 서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 교수는 "공공의대가 설립되더라도 현장에서 뇌졸중 같은 필수 중증 응급질환을 담당할 전문인력이 배출되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며 "지금 현재 현장을 지키는 전문의들이 5~10년 뒤 정년 퇴직하면 누가 밤새워 센터를 지킬지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사망 원인 4위인 뇌졸중은 매년 10만 명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고령화와 맞물려 환자 수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장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뇌졸중 환자들과 마주하는 임상의사 입장에서는 제도에 관한 아쉬움도 크다. 이 교수에 따르면 뇌졸중의 약 80%를 차지하는 뇌경색은 수술, 시술 대신 혈전용해제를 투여해야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현행 질병분류체계가 치료 과정을 배제한 채 최종적으로 수술·시술 등 외과적 처치가 이뤄졌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는 탓에 ‘수술이나 시술을 받지 않는 뇌졸중 환자’가 여전히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충족하려면 전문진료질병군 환자를 30% 이상 진료해야 하는데, 일반진료군으로 분류돼 있으면 진료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뇌졸중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 응급환자 분류 체계(KTAS)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뇌경색은 증상 발생 4시간 30분 이내에 정맥 내 혈전용해제를 투여해야 한다. 뇌경색 발병 후 1시간 30분 내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할 경우 치료받지 않은 환자보다 장애가 남지 않을 가능성이 3배가량 높다. 반대로 3시간을 넘기면 그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그런데 뇌졸중 환자의 과반수는 KTAS 3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왜곡된 분류체계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뇌졸중 의심 증상으로 병원에 오고도 우선순위가 밀려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 교수는 "뇌졸중으로 평생 후유장애를 갖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환자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막심하다"며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보건의료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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