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총선에서 마크 카니 총리의 자유당이 승리해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주권 침해 발언이 캐나다인의 반미 정서를 자극, 자유당의 ‘반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다. 다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다수당 지위는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영 CBC 방송과 CTV 뉴스 등 캐나다 언론은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자유당이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해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표 중반을 넘긴 시점에 집권 자유당은 하원 전체 343개 의석 중 167개 지역구에서 당선 또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과반 의석 달성을 위해서는 172석이 필요하다.
카니 총리는 이날 총선 승리 선언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의 배신이라는 충격을 극복했지만, 그 교훈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과 캐나다의 옛 관계(old relationship)는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를 깨부수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이번 총선은 단기간의 지지율 반전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애초 자유당은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이민자 문제 등으로 인한 불만이 쌓이면서 지지율이 급락했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차기 총리는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대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보수당은 1년 넘게 자유당을 20%포인트 이상 앞섰다.
상황을 뒤집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의 새 정권 출범 후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는 발언을 일삼고, 여기에 캐나다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압박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그동안 쌓인 ‘캐나다의 트럼프’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독이 됐다. 반면,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가 사임한 뒤 카니 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가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자유당의 지지율은 극적으로 반등했다. 캐나다의 내부 결속 과정에서 경제 전문가인 카니 총리가 트럼프 관세에 대응할 적임자라는 이미지가 더해져 자유당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판까지 ‘자유당의 승리 요정’이었다. 투표 당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캐나다가 미국의 소중한 51번째 주가 된다면 관세나 세금 없이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목재, 에너지와 다른 모든 산업을 4배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캐나다의 반미 정서를 또 한번 자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캐나다의 선택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그리고 그가 동맹국과 무역 파트너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반대 투표로도 해석된다”고 짚었다.
집권 연장에 성공한 카니 총리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위협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이민자 문제 등 산적한 국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야당의 견제 속에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른 정당의 지지와 협력에 기대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실제로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이날 자유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카니 총리가 ‘아슬아슬한 소수 정부’를 이끌게 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 결과가 사실상 동점에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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