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우리나라를 장시간 노동 국가로 진단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정당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이 과연 시대적 과제에 해당하는지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과제는 물론 정책 목표조차 될 수 없다. ‘임금은 근로시간에 비례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원칙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삭감을 의미한다. 임금 삭감이 정책 목표가 될 수 없듯 근로시간 단축 역시 독립적인 정책 목표가 될 수 없다.
정책의 진정한 목표는 근로자의 건강 보호, 생산성 향상, 일·생활 균형, 출산율 제고 등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를 갖는 요소여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따라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수단인지 검증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건강 보호가 정책 목표라면 근로시간 단축이 건강 개선에 미치는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다른 정책 수단들과 비교해 효율적 수단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적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법정 근로시간 제도는 근로시간 제도라기보다는 초과 근로에 대한 추가 수당 지급을 강제하는 임금 제도다. 주 32시간제 도입 시 주 40시간 근로자는 추가 8시간 근로에 대해 50%의 가산 수당을 받게 되며 이는 근로자의 임금을 10%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임금 상승은 근로자의 소득을 높이지만 고용 감소와 물가 상승이라는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특히 영세기업이나 인건비 비중이 높은 기업, 가격경쟁을 하는 수출 기업이 경제적 비용의 부담을 크게 느낄 것이다.
만약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노동비용 증가의 부작용을 일정 부분이라도 상쇄할 수 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추가 근로시간에 대한 한계비용을 높여 기업이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를 줄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생산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주 5일제 도입 이후 일부 연구는 생산성 향상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주 5일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후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 단순히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기업의 근로시간 관리가 그만큼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의도치 않은 우연적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보다는 생산성 향상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동일한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완료할 수 있으므로 근로시간은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임금체계가 단순 근로시간 기준이 아니라 생산성과 성과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시계로 측정한 근로시간과 연동된 임금체계는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을 늘리는 유인을 제공하는 반면 생산성에 기반한 보상 체계는 근로자로 하여금 효율성 향상에 노력하도록 유도한다. 생산성 향상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기업과 근로자가 생산성 제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을 정비하면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경우 근로시간 단축은 부수적 결과로 자연스럽게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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