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4일 오전 6시 10분,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로 향하는 드루즈바 송유관의 원유 공급이 중단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로 우크라이나 원유 전송 업체가 러시아 송유관 업체와의 거래를 끊었기 때문이다. 전체 원유 공급의 절반 이상을 드루즈바 송유관에 의존하던 세 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각국의 원유 조달 전략은 달랐다. 대체 수입처를 찾지 못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EU를 통해 송유관을 막은 우크라이나와의 중재에 매달렸다. 반면 체코는 에너지 탈(脫)러시아 전략에 속도를 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이달 18일 “60년 넘게 의존해온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공식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체코에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항에서 출발한 TAL(Transalpine Pipeline) 송유관을 통해 비러시아산 원유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체코는 2023년 친EU 성향의 페트르 파벨 대통령 당선 이후 ‘에너지 탈러시아’를 위해 TAL 송유관의 연장 프로젝트인 TAL플러스에 16억 코루나(약 1048억 원)를 투자했다. TAL플러스는 연간 최대 800만 톤의 원유를 운송해 체코의 정유 수요 전량을 충당할 수 있다.
체코가 선택한 TAL 송유관이 지정학적 안정성, 해양 항만과의 연계성, 독립적인 운용 체계 덕분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중동 등 글로벌 원유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TAL 송유관은 유럽 내 원유 공급망 다변화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후에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또 다른 지각변동이 생기고 있다. 미국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대미 무역적자 해소의 레버리지로 적극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가자전쟁과 후티 반군 등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안정적 에너지 공급 방안 모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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