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피크론’을 기억하실 것이다. 일본에서 처음 제기됐던 ‘한국의 경제성장은 끝났다’는 주장이다. 인구절벽으로 노동력이 급감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3년 11월에 이 용어가 등장했으니 1년 5개월가량이 지났다.
이제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보자. ‘일본이 신통하다’고 자인해야 할 판이다. 올 1분기 성장률은 –0.2%(전 분기 대비)를 찍었다. 환란 때도 없던 4분기 연속 0.1% 이하다.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닫혀 가는 존재론적 위기다. 빈곤의 함정, 중진국의 함정도 넘었던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
이 사달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정치권에 있다.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바뀌자마자 모든 대선 주자들이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고 한다. 솔직히 이들이 그간 얼마나 공익과 국익을 앞에 놓고 일해 왔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선거판 정치인의 태세 전환은 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다.
사실 코리아 피크론을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피크론을 빗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다. 지금 한국은 이재명 천하다. 다른 대선 주자를 압도하는 경쟁력 때문에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조어가 일찌감치 거리낌 없이 사용돼왔다. 대선이 30일 남짓 다가왔지만 어대명의 위력은 요지부동이다. 시중에서는 이번 대선이 이재명에 대한 찬반투표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그만큼 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테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재명 피크론’을 제기하고 싶다. 이재명 피크론은 아직 당선 전인 현 시점이 바로 이재명 후보가 구름 위를 걷는 순간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흔히 보수 진영에서 ‘이재명 포비아’를 말한다. 이 후보가 대권을 잡으면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한다고 우려해왔다. 내란청산특별법으로 반대파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고 검찰과 같은 사정기관은 껍데기만 남길 수도, 또 상법개정안을 비롯해 노란봉투법 등 기업에 독소 조항이 가득한 각종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후보가 승리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입법의 시대’가 열린다는 호들갑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 후보 곁에는 쓴소리를 할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당내 경선에서 90%를 얻었다는 것은 멀리, 크게 보면 좋은 일이 아니다. 절대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당선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 지옥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꺼져가는 한국호의 성장 엔진을 되살려야 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도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워낙 사고무친의 형편이라 이 후보가 그간 줄기차게 주장해 온 기본(무상) 시리즈, 주 4일제 근무, 법인세 인상 등을 시행하기 만만찮은 환경일 수 있다. 물론 이 후보가 대통령 직속에 예산처를 두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지만 정말 그가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면 결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이재명 피크론은 잘 나갈 때 자중자애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히 ‘우클릭’의 선거 전략적 측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진영의 의견을 묻고 타협하고 조율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재명 피크론은 절대권력에 대한 경고의 메타포요, 힘 있는 자가 그 힘을 이롭게 써야 한다는 고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이재명 피크론 자체가 보수 진영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제로로 보는 것은 아니다. 반명 연합이든, 개헌 연합이든 보수 진영이 똘똘 뭉치면 매우 가느다란 확률의 대선 승리도 현실화할 수 있기에 이 후보 입장에서는 그래서 지금이 피크라는 뜻도 담고 있다.
이 후보로서는 항시 현재가 피크라는 생각으로 맞은편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경제로 한정하면 국가 부의 원천인 기업이 싫어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경제가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난센스다. 권력에 취해 힘을 과시하는 순간 슬픈 결말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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