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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간 건 매킬로이만이 아니었다

제89회 마스터스 직관기<下>

AP연합뉴스




DAY3_ 디섐보 더 글래디에이터

김주형과 같은 조로 경기한 아마추어 마이클 맥더멋이 3라운드 신 스틸러였다. 190㎝가 훨씬 넘어 보이는 장신의 맥더멋은 240야드나 되는 긴 파3 홀인 4번에서 드라이빙 아이언으로 그린 한가운데에 올렸다. 하이브리드 클럽을 든 김주형보다 결과가 좋았다. “컴온 마이크!”를 열렬히 외치는 한 청년에게 뭐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이 골프장 회원이고 골프를 엄청 잘 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맥더멋은 소싯적에 펜실베이니아주 올해의 선수를 다섯 번이나 지낸 초고수였다. 드라이버 샷 거리가 310야드쯤. 본업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지만 짝이 안 맞을 때 ‘짠’하고 나타나는 마스터스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김주형(오른쪽)과 같은 조로 경기하는 ‘더 마커’ 마이클 맥더멋. 파3인 4번 홀 티잉 구역에서다. AFP연합뉴스


전날 2라운드에 2오버파 컷 기준을 통과한 선수는 53명. 3라운드부터는 3명이 아니라 2명이 한 조로 치기 때문에 53명이면 짝이 안 맞는다. 이때 외로운 선수 한 명을 위한 마커가 배정되는 것이다. 김주형은 “혼자서 쳤으면 리듬을 잃었을 텐데 맥더멋 덕분에 즐겁게 경기했다”고 했다. “정말 멀리 치더라고요. 아이언 샷 때 제가 그보다 한 클럽 더 길게 잡을 때도 있었어요.” 김주형은 “제가 먼저 퍼트를 끝내면 맥더멋은 남은 퍼트를 하지 않고 그냥 공을 집는 식이었지만 정식으로 했다면 70대 초반은 치는 골프였다”고 했다.

매킬로이는 오후 2시 30분에, 디섐보는 바로 다음이자 마지막 조로 2시 40분에 티오프했다. 첫날 주춤했다가 2라운드에 66타로 분위기를 바꾼 매킬로이는 이날도 66타를 쳐 12언더파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글을 두 방이나 터뜨렸다. 2번 홀(파5) 칩인 이글과 15번 홀(파5) 1.5m 이글 퍼트 성공이다. 마스터스 사상 한 라운드 이글 2개는 2020년 캐머런 챔프 이후 5년 만.

흥분할 만도 했지만 매킬로이는 놀랄만치 차분했다. 이글보다 “11번 홀(파4)의 (2m) 파 퍼트 성공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면서 “최종 라운드도 하던 대로 할 것이다. 이번 주 내내 휴대폰을 보지 않고 있는데 계속 그럴 것”이라고 했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정말 로리 매킬로이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 EPA연합뉴스


매킬로이가 강 같았다면 디섐보는 거센 파도의 바다 같았다. 앞 조의 매킬로이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이날 3타를 줄였는데 마지막 4개 홀에서 버디 3개를 몰아쳤다. 18번 홀(파4) 버디는 무려 14.5m짜리. 캐디의 손이 휘청 내려앉을 만큼 힘껏 치는 세리머니가 인상적이었다. 16번 홀(파3) 티샷을 핀에 딱 붙여 버디를 잡고는 열광하는 관람객들을 3초 간 가만히 응시했다. 로마 시대의 검투사처럼 벌겋게 독이 오른 무표정의 얼굴은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디섐보는 “항상 리더보드를 확인한다. 그래서 매킬로이가 잘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잘 먹고 나오겠다. 특별히 휴대폰을 멀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매킬로이와 2타 차의 2위. 17번 홀(파4)에서 매킬로이는 2m 버디 퍼트를 놓쳤는데 이 실수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1~3라운드 드라이버 샷과 퍼트 지수도 디섐보가 앞서있었다.

DAY4 PARTⅠ_ 머리 위의 검은 새

매킬로이와 디섐보의 결투 시작은 오후 2시 30분. 2시쯤부터 1번 홀(파4) 티잉 구역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윽고 특권층만 출입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 2층에서부터 잔잔한 박수가 시작됐다. 둘이 모습을 드러낸 것. 박수와 환호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디섐보의 팬 중에는 마초 냄새를 물씬 풍기는 백인 남성이 다수였다.

작년 6월 US 오픈에서 1타 차로 우승과 준우승을 나눴던 디섐보와 매킬로이는 10개월 만에, 그것도 마지막 날 챔피언 조로 운명처럼 만났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내뿜는 둘의 머리 위로 검은 새 두 마리가 차례로 날아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무대로 한 추격전이었다. 추격전의 끝은 역전일까, 수성일까.

최종 라운드 1번 홀 티잉 구역. 매킬로이와 디섐보의 이름표가 꽂히며 결투가 시작됐다. AFP연합뉴스


매킬로이의 티샷이 오른쪽 벙커로 갔다. 세 번째 샷은 길었고 첫 번째 퍼트도 길었다. 3온 3퍼트 더블 보기. 한 홀 만에 동타가 됐고 두 홀째에 역전을 허용했다. 서슬 퍼런 디섐보의 검 앞에 매킬로이는 나약해 보였다.

폭풍은 3번(파4)과 4번 홀(파3)에서 더 요란하게 휘몰아쳤다. 다만 그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 매킬로이가 2연속 버디로 회복한 사이 디섐보는 퍼트 난조에 2연속 보기를 범했다. 12언더파-9언더파. 단 네 홀 동안 정신없는 난타전을 벌인 결과 매킬로이가 출발 때보다 1타를 더 달아난 셈이 됐다. 네 홀 동안 순위만 세 번이 바뀌었다.

9번 홀(파4)에서 디섐보는 드라이버 샷으로 365야드를 보냈다. 하지만 매킬로이가 먼저 넣은 2m 안쪽의 버디 퍼트를 디섐보는 넣지 못했다. 숨 가빴던 전반 9홀이 그렇게 4타 차로 마무리됐다. 버릴 장면 하나 없는 2시간 10분짜리 영화였다. 현지 중계진은 “골프에서 가장 멋진 9홀 경기 중 하나”라고 했다.

11번 홀의 디섐보(왼쪽)와 매킬로이. AP연합뉴스


DAY4 PARTⅡ_ FOR CAREER GRAND SLAM

전반 9홀이 1편이면 후반 9홀은 속편이었다. 예상 시놉시스는 디섐보의 반격 또는 매킬로이의 쐐기였지만 촬영에 들어가자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됐다. 잊힌 줄 알았던 로즈가 네 조 앞에서 미친 듯 쫓아왔기 때문이다.

매킬로이는 11~13번 홀 아멘 코너에서 길을 잃었다. 11번 홀(파4) 두 번째 샷이 개울 앞에 겨우 멈췄지만 세 번째 샷이 좀 짧아 2퍼트 보기를 했다. 13번(파5)에선 세 번째 샷이 두껍게 맞은 탓에 그린을 때린 뒤 뒤로 튀어 개울에 쏙 들어갔다. 관람객들의 탄식과 함께 매킬로이도 고개를 숙였다. 드롭존에서 친 다섯 번째 샷 뒤 내리막 보기 퍼트가 살짝 빗나가 더블 보기. 11언더파로 내려간 매킬로이는 16번 홀(파3) 티샷을 핀 1.5m에 붙인 로즈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14번 홀(파4)에서 매킬로이가 보기를 했을 때는 루드비그 오베리까지 3명이 10언더파 공동 선두였다. 남은 홀이 많은 매킬로이가 유리하긴 했지만 두 홀에서 3타를 잃은 그는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15번 홀(파5)에서 영웅적인 샷이 나왔으나 이글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페어웨이 왼쪽 끝에서 207야드를 남기고 친 7번 아이언 샷이 가파른 드로를 그리며 눈앞의 키 큰 나무들을 피하고 그린 앞의 개울도 넘어 핀 2m 안쪽에 떨어졌다. 첫 퍼트 실패로 아쉬운 버디. 1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섰는데 로즈가 18번 홀(파4)에서 6m 버디를 넣어버려 11언더파 공동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아, 디섐보 얘기를 너무 안 했다. 그는 11번 홀 더블 보기에 6타 차로 일찌감치 멀어지고 말았다.)

매킬로이에게 남은 건 세 홀. 16번 홀 3m 안쪽 버디를 놓쳤으나 17번 홀에 196야드에서 친 두 번째 샷을 완벽에 가깝게 붙여 12언더파로 달아났다. 18번 홀은 사흘 내내 어렵지 않게 파를 지킨 곳.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벙커 샷을 1.5m에 잘 떨어뜨려 놓았다.

정규 라운드 18번 홀 1.5m 파 퍼트를 왼쪽으로 놓치고 허탈해 하는 매킬로이. 로이터연합뉴스


나는 커리어 그랜드슬래머의 벅찬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자 18번 홀 그린에서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길목에 서있었다. 휴대폰도, 전광판도 없는 대회이고 그린 주변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이니 파 퍼트를 넣었는지 놓쳤는지는 관람객 반응으로밖에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회 관계자 주변으로 얼굴을 알 만한 외국의 유명 기자들이 둥글게 모여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 끼어들어 보니 관계자가 든 건 라이브 중계를 튼 태블릿PC였고 퍼트를 앞둔 매킬로이의 오른쪽 위로 ‘FOR CAREER GRAND SLAM’이라는 문구가 심장을 두드렸다.

다음 순간 들린 건 주변을 뒤덮는 탄식 소리. 한 박자 늦게, 왼쪽으로 빠지는 퍼트가 화면에 잡혔다. 잠시 뒤 커리어 그랜드슬래머의 위풍당당한 모습 대신 연장에 끌려간 안타까운 처지의 매킬로이가 다가왔다. 그런데 적어도 표정에서는 안타까움을 읽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쯤 익숙하다는 듯 어딘가 초월한 얼굴이었다. “힘내 로리”라는 사람들의 응원에 옅은 미소로 반응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그의 골프 인생에서 낯설지 않았다. 가깝게는 지난해 US 오픈에서 5홀 남기고 2타 차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2011년 마스터스 때는 최종일 시작 때 4타 차 선두였는데도 80타를 치고 처참하게 미끄러졌던 그다.

클럽하우스에 잠시 들렀다 나온 매킬로이는 두 번의 샷을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또다시 자신을 덮으려는 패배의 그늘을 지겹지도 않느냐는 듯이 대차게 걷어냈다. 로즈도 잘 쳤지만 매킬로이의 손을 떠난 두 번째 샷은 로즈의 볼과 핀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 홀 1.2m에 멈췄다.

천신만고 끝에 우승을 거머쥔 매킬로이가 딸 포피를 끌어안고 감격해 하고 있다. 포피의 시선이 쓸쓸히 퇴장하는 저스틴 로즈 쪽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DAY4 PARTⅢ_ 티셔츠에 새겨질 아빠의 이름

그린재킷을 입고 기자회견장을 찾은 매킬로이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질문을 받기 전에 그는 거꾸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년 대회 땐 우리 대체 무슨 얘길 해야 할까요?” 그동안 질의응답이 대부분 마스터스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 등이었으니 앞으로는 질문거리도 없지 않겠냐는 유쾌한 농담이었다.



캐디의 만류에도 눈앞의 나무 사이를 넘긴 7번 홀(파4)의 9번 아이언 샷, 미친 드로를 그린 15번 홀의 두 번째 샷, 직전 홀 버디 실패 뒤 17번 홀의 딱 붙인 샷 등이 손에 꼽을 만했지만 매킬로이 자신은 3번 홀(파4) 어프로치 샷이 결정적이었다고 돌아봤다. 아득한 높이의 우뚝 솟은 그린을 향한 칩샷은 그린 앞에서 한 번 튄 뒤 왼쪽으로 휘어 핀에 붙었다. 디섐보와 팽팽한 기 싸움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기 시작한 홀이기도 하다.

매킬로이는 대회 한 주 전 마스터스 여섯 차례 우승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와 점심식사를 하며 18개 홀 모든 샷의 공략을 일일이 의논했고 대회 기간 내내 휴대폰을 아예 멀리했으며 경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19세기 영국 사교계를 소재로 한 판타지 사극)을 잠깐씩 보는 것으로 밤 시간을 보냈다. 디섐보와 결투 때는 일부러 대화를 피했다. 1라운드 때 로즈가 말한 것처럼 혼자서 버블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쳤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계획을 세워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 매킬로이는 아주 큰 싸움을 준비했다. 움켜쥔 모래가 행여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을까 아예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매킬로이는 “몇 번이고 넉다운 당하는 복서 같았다”는 말로 최종일 경기의 업앤다운이 심리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음을 털어놓았다.

우승 연설 중 감정에 복받쳐 잠시 고개를 숙이는 매킬로이. EPA연합뉴스


시상식 내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던 다섯 살 딸은 아빠가 해낸 일이 어떤 건지 지금은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우승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건지 물어온다면 아빠는 어떤 답을 할까.

“인내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번번이 돌아섰지만 한 번도 낙심하진 않았고 계속 부딪쳤다는 걸 얘기해주려고요.”

마스터스 굿즈 중에는 역대 우승자 명단이 등 부분에 빼곡히 프린트된 티셔츠가 있다. “2라운드날 그 티셔츠를 갖고 오더니 ‘왜 아빠 이름은 여기 없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오늘에야 답을 해줄 수 있었죠. 내년에 나오는 티셔츠엔 아빠 이름이 들어가 있을 거야.”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내셔널 회장의 흐뭇한 미소 아래 매킬로이가 우승 트로피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빠가 우승 연설 중 자기 얘기를 하자 귀를 기울이는 딸 포피. 지난해 이혼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는 과정에서 어린 딸에게 미안함이 컸을 매킬로이는 이날 연설 중 딸에게 심심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FP연합뉴스


BEAUTIFUL DAYS

그린 앞까지 쭉 물로 연결돼있는 16번 홀은 관람객들 사이에 전통의 인기 구역이다. 첫 조가 이 홀에 오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회를 즐긴다. 휴대폰을 포함한 전자기기 반입 금지라 앞에서 누가 어떻게 쳤는지 알 수도 없다. 10m쯤 되는 대형 스코어보드만 틈틈이 확인하면서 각 홀에 표기되는 숫자를 보고 플레이를 상상할 뿐이다.

그래도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 바람에 반응하는 물살과 멀리 보이는 선수들, 이따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동행한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한다. 손에 든 건 조 편성과 코스 맵이 나와있는 한 장짜리 유인물, 그리고 67쪽짜리 관람객 가이드 팸플릿이 전부다. 1.5달러짜리 샌드위치와 2~6달러 음료도 좋은 친구다.

음료를 든 채 쌍안경으로 선수를 확인하는 페이트런(관람객). 전자기기와 깃발, 배너, 유모차, 외부 음식, 금속 스파이크가 박힌 골프화, 사다리, 셀피 스틱은 반입 금지지만 쌍안경은 괜찮다. AP연합뉴스


누가 몇 년도에 몇 타로 우승했는지, 코스는 어떻게 생겨난 건지, 어디가 구경하기 좋은 명당이며 이유가 뭔지, 위대한 선수의 이름을 딴 다리는 어떤 연유로 그 이름을 갖게 됐는지 등이 팸플릿에 다 들어있다. 볼 수 있는 건 경기와 스코어보드, 그리고 책자이니 4~5시간 동안 몇 번이고 책자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관람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스터스와 오거스타의 충성 팬이 되어간다.

아침 7시에 게이트가 열리면 뜬금없는 경보 대회가 시작된다. 코스 내에서 뛰는 것도 금지라 빠른 걸음 경쟁이 치열하다. 관람객은 두 부류다. 접이식 의자를 들고 경기가 잘 보이는 명당으로 향하는 게 한 부류이고 또 하나는 금방 동나는 할아버지 모습의 인형 ‘놈(gnome)’을 쟁취하기 위해 기념품숍으로 직행하는 부류다.

1번 홀 페어웨이 오른편의 메인 스코어보드는 기념 사진을 찍는 포토 스폿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AFP연합뉴스


그 유명한 파3 12번 홀에서 스코티 셰플러의 3라운드 티샷을 지켜보는 관람객들. AFP연합뉴스


이름표를 단 의자를 한 곳에 박아두면 그 자리는 하루 종일 내 자리다.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맨 앞줄은 스폰서 관계자들을 위한 의자가 미리 배치되기도 한다. 의자 간 간격은 평균 한 뼘. 한국에서 오거스타 인근 애틀랜타까지 14시간을 탄 이코노미석이 떠올랐으나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드라마틱한 승부가 연출되는 아멘 코너가 명당 중의 명당. 그렇지만 3번 홀 그린 쪽도 좋다. 3번 홀 퍼트를 보다가 고개만 돌리면 4번 홀 티샷을 구경할 수 있다. 16번이 바로 옆인 6번 홀(파3) 쪽도 명당이다. 티잉 구역 바로 아래로 급한 내리막 경사에 의자가 약 열 줄 놓인 모습이 이채롭다. 등 뒤에서 티샷이 날아가고 선수가 걸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연습 라운드 때는 카메라 촬영이 허용된다. 매킬로이의 칩샷을 렌즈에 담는 관람객들. 로이터연합뉴스


1라운드에 7번 홀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인파. 선수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을 땐 이렇게 크로스로드를 열어 이동을 돕는다. AFP연합뉴스


2라운드에도 매킬로이 조를 따라다녀 봤다. 5번 홀(파4) 그린 쪽 스탠드로 올라가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거구의 보안요원이 다가와 앉을 자리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서있다가 가겠다고 했더니 마침 그린으로 올라오는 매킬로이를 가리키며 “아, 저 선수면 따라다녀야죠”라며 웃었다. “생각보다 너무 덥다”는 내게 그는 “비가 경기일을 피해 월요일과 1라운드 뒤 밤에만 내렸으니 이런 축복이 없다”며 물 한 병을 건넸다.

매킬로이는 이 홀에서 무난하게 파를 적었다. 6번 홀 티잉 구역 가는 길을 몰라 물으니 보안요원은 먼 거리를 직접 달려가 잠겨있던 뒷문을 열어줬다. 나는 악수로 고마움을 표현했고 덕분에 6번 홀 티샷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그린을 미스한 매킬로이는 실망한 듯 클럽을 살짝 내리찍고는 이내 파인 자국을 헤드로 정리했다. 7번 홀 버디도 아깝게 놓쳐 얼굴이 벌개졌지만 다음 홀로 이동하면서 아이를 발견하고는 다정하게 볼을 던져줬다.

1라운드 경기일 이른 아침에 보안요원들을 따라 코스에 입장하는 페이트런들. 코스 안팎에서 경찰과 보안관도 흔히 볼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저스틴 토머스가 본 대회에 앞선 사전 이벤트인 파3 콘테스트 중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드라이빙 레인지 뒤에는 16세 이하만 대기하다가 사인을 받을 수 있는 별도 구역도 있다. AFP연합뉴스


마스터스의 하루는 아주 일찍 시작된다. 프레스빌딩과 코스 초입 간 카트 운전을 맡은 한 자원봉사자는 “새벽 5시 반에서 6시 출근한다. 우리는 그래도 출근이 늦은 편이다. 코스관리팀은 새벽 1시쯤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는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않나. 코스 구석구석을 반드시 다 둘러봐야 한다”고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권했다.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빈틈없이 해냈을 때 얼마나 멋진 그림이 완성되는지 마스터스는 잘 보여준다.

‘깃발 꽂힌 천국’이라는 오거스타내셔널은 신이 빚은 자연에 선수와 관람객, 관계자가 함께 만드는 천국이었다. 선수는 한 번 출전도 영광으로 여기고 골프 팬은 직관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대회. 그래서 여기선 매 순간이 모두에게 축복이다.

임성재의 해맑은 표정이 잘 포착됐다. 3라운드 7번 홀에서 벙커 샷 버디에 성공한 뒤. 로이터연합뉴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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