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딥페이크를 이용한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범죄단체를 만들고, 주식분석가 등을 사칭하며 120억 원을 가로챈 범죄단체 총책 부부 등 45명이 입건됐다. 로맨스스캠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해 연인 혹은 친구 등의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여러 시나리오로 돈을 가로채는 범죄 행위다. 특히 아름다운 외모 사진으로 호감을 사고, 거액의 물품 사진 등으로 재력을 과시하는 특징이 있다.
울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한국인 총책 A씨 부부 등 범죄조직원 45여 명을 입건하고, 이중 적색수배가 내려진 인사팀장 등 10명을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가 속한 범죄조직은 캄보디아에 있는 건물을 통째로 사들여 운영사무실을 마련한 후, 대포폰과 컴퓨터 등이 완비된 사무실을 차리고 2024년 3월부터 로맨스스캠 사기행위를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100여 명으로부터 120억 원가량을 가로챈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기존의 단순 생활비나 택배비, 만남을 위한 항공료 등을 요청하던 로맨스스캠에서 발전해 주식투자나 가상화폐 투자를 접목한 고도화된 사기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 범죄조직은 가상의 34세 여성 B씨를 만들었다. 가상의 여성은 MBTI, 혈액형, 학력, 집안, 키, 몸무게, 가족관계, 재력, 차량 등 세부 정보까지 설정했다. 가상의 여성 B씨를 통해 채팅 앱에서 남성들에게 무작위로 말을 걸었다. 일단, 피해자와 연락을 시작하면 B씨 역할을 맡은 채팅 담당 직원들이 미리 준비한 10∼15일 치 시나리오에 따라 매일 채팅하면서 마치 교제하는 사이가 된 것처럼 신뢰를 쌓았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영상통화까지 하면서 상대방이 완전히 믿도록 했다. B씨는 자신이 투자를 통해 서울 강남에 40억원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카페도 운영 중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같이 투자 공부를 해보자”라고 권유했다.
이 말에 속은 피해자들은 B씨가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에 접속했고, 이때 해당 채널에 등장해 ‘경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다른 일당이 피해 남성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했다. 이 전문가는 실제 존재하는 투자회사의 가짜 투자사이트와 대포통장을 알려주며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금을 보내도록 유도했다.
피해 남성들은 가짜 사이트에서 자신의 투자금이 수익을 나는 것을 보고 안심했으나 수익금을 찾겠다고 하면, B씨는 연락을 끊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0여 명을 상대로 120억 원을 뜯어냈다.
범죄조직 구성을 보면 한국인 총책, 인사팀(비자·월급관리), 화력팀(유튜브 조회 수 조작 등), 채터(피해자와 직접 대화), TM(피해자와 영상통화), 특수팀(유튜브 강의, 전문가 행세) 등으로 철저히 분업화했다.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조직원 간에도 철저히 가명과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건물 내 숙소에서 합숙 생활을 했으며, 수익금은 현금과 코인으로 지급했다. 조직원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고액의 급여를 제시하며 모집했다.
경찰은 코인 지갑과 계좌 분석을 통해 이들이 은닉한 불법 수익금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또한, 범죄에 사용된 통장과 휴대폰 100여 대는 이용정지 조치했다. 범죄에 사용된 사이트 등도 방심위에 삭제와 차단 요청을 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간부급 피의자 모두와 단순 가입자들 대부분을 특정했다. 피의자 20여 명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으며, 그 중 캄보디아 현지에 있는 피의자들은 인터폴을 통해 수배 조치했다. 국내에 있는 피의자들은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범죄단체는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고액의 급여 등을 제시하며 해외 취업을 알선하고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이곳에 발을 들이면 외출과 외박의 자유 없이 감금된 상태로 일을 하게 되며, 설령 속아서 갔더라도 범죄단체 가입·활동죄의 피의자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하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울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경찰청 국제협력관실을 통해 캄보디아 당국과 공조해 현지에서 체포된 총책 A씨 부부에 대한 송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해외 도피로 미검거 상태인 피의자들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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