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이후 첫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꺼내들었다. 2030년까지 연간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낮추고 주4.5일 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 대선과 올 초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언급했던 주4일제도 장기적 목표로 내걸었다. ‘우클릭’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 후보가 직장인 표심을 잡기 위해 ‘친노동’으로 다시 노선 전환에 나선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후보는 30일 페이스북에 ‘직장인 정책 발표문’을 올리며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성공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직장인 공약은 크게 △노동시간 단축 △재충전 지원 △일상생활 부담 개선 등으로 나뉜다. 이 후보는 그중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힘을 실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노동의 가치도 단순·반복 업무에서 창의성과 부가가치 창출로 전환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후보는 “과로사를 막기 위해 하루 근로시간 상한을 설정하고 최소휴식시간제도를 도입하겠다”며 “법 제정을 통해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효율적인 대책 수립 의무를 국가가 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고려한 듯 “주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확실한 지원 방안을 만들겠다”며 유인책도 내놓았다.
포괄임금제에 대한 손질도 예고했다. 이 후보는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포괄임금제를 검토하겠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임금 등 근로 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고 사용자에게는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기록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재충전 지원’은 휴가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근로자 휴가지원제도 활성화 △지역사랑 휴가지원제 신설 △1박 2일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한 ‘숏컷 여행’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후보는 “연차휴가 일수와 소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며 “연차유급휴가 취득 요건을 완화하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연차휴가 저축제도를 통해 3년 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일상생활’ 공약은 생활비 지원에 방점을 뒀다. 이 후보는 “전월세 관련 주거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전세자금 이차보전을 확대하고 월세세액공제 대상자의 소득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직장인 교통비 지원 △미성년 자녀 및 노부모 통신비 세액공제 개선 △자녀 수에 따른 신용카드 공제 한도 상향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에 초등학생 예체능 부분 포함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친노동’ 정체성은 선대위 구성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며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후보는 ‘근로자의 날’인 다음 달 1일 한국노총과 정책 협약식을 갖는데 이 자리에서 노란봉투법 및 정년연장 등 노동계 요구 사안을 대폭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외연 확장과 당의 정체성 사이를 오가는 이 후보의 오락가락 행보에 재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1872시간)이 OECD 평균(1742시간, 2023년 기준)을 웃도는 게 사실이지만 경쟁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인 노동생산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2.98달러로 2022년 기준 OECD 21개 회원국 중 17위에 머물러 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법정 근로시간 내에서 노사 자율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데 대한 지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노동생산성 향상과 중소기업·영세업체의 인력 확보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앞서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찬성하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입장을 유보한 바 있다.
포괄임금제 개편도 근로자 임금 손실이라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포괄임금 계약이 근로시간 산정의 복잡성을 줄이고 임금·인건비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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