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6·3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취임 첫해 개헌안을 마련해 2년 차에 개헌을 완료하고 3년 차에 새 헌법에 따라 총선·대선을 실시한 뒤 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임기 3년 차 하야를 전제로 개헌에 전력한다는 로드맵을 내걸며 대선 출마의 진정성을 극대화한 셈이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국익의 최전선인 통상외교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는 현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전 총리는 개헌과 함께 통상 문제와 국민 통합을 시대 정신으로 내세웠다. 그는 “개인과 진영의 이익을 좇는 정치 싸움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며 “공직 외길을 걸어온 제가 신속한 개헌으로 헌정 질서를 새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강조했다. 개헌의 큰 방향성으로는 견제와 균형·분권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방향은 대통령 직속의 개헌 지원 기구를 만들어 그 안에서 국민·국회가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미 관세 협상에 대한 해결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언급한 한 전 총리는 “미국발 관세 폭풍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가장 시급한 통상 현안”이라며 “한국 첫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제부총리·국무총리·주미대사를 지내는 등 이 일을 가장 오래해온 사람으로, 이번 통상 현안도 반드시 풀어내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는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경선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분들과는 어느 누구와도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약자들을 찾는 것으로 대선 첫 공식 행보를 시작하며 사회 격차와 지역 갈등을 풀겠다는 국민 통합을 내세웠다. 한 전 총리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을 방문했다. 한 전 총리는 오 시장에게 “오 시장께서 내세웠던 ‘약자와의 동행’을 (대선) 공약에 대폭 포함시켜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오 시장은 “물론”이라고 화답했다. 한 전 총리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민 통합과 약자 동행이 이뤄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새 정부는 오직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바로 ‘여러분의 정부’”라며 “대선 과정에서 경쟁하는 분들을 삼고초려해 거국 통합 내각에 모시겠다”고 말했다.
임기단축 승부수…"3년 뒤 총선·대선 동시에 치르겠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대선 방정식은 ‘3년 임기 내 개헌’과 ‘반명(반이재명) 빅텐트’로 요약됐다. 지나칠 만큼 첨예한 정치권의 대립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 개헌을 해내고 말겠다는 공언은 3년 임기로 분출됐다. 여기에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독주 체제를 종식시킨다는 의지는 반명 세력을 규합하겠다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한 전 총리가 제3후보로 출발하지만 국민의힘을 포함해 반명 세력을 모두 묶어낼 경우 6·3 대선의 향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개헌’ 승부수를 띄우며 대권 행보에 본격 돌입했다. 경제성장, 국민 통합, 나아가 통상 위기 극복 등 대한민국 위기 수습의 출발점은 ‘협치 회복’이라며 3년 임기의 ‘정치 개혁 디딤돌 정부’를 공약했다. 특히 개헌과 거국 내각을 매개로 한 ‘반명 빅텐트’ 구성에도 의지를 내비쳤다.
한 전 총리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 출마 기자회견의 대부분을 개헌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 할애했다. 그는 “통상 질서가 급변하고 어떤 나라도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변혁의 시기”라면서 “갈등과 분열이 공동체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애써 일으켜 세운 나라가 무책임한 정쟁으로 발밑부터 무너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갈등 지향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 없이는 어떤 분야도 진일보할 수 없다는 게 한 전 총리의 생각”이라며 “정치를 바꾸는 방법론이 개헌”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올해 안에 분권(견제와 균형)을 요체로 한 개헌안을 마련해 임기 2년 차에 제7공화국의 문을 연 뒤 2028년 4월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러 스스로 퇴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 직속의 개헌 지원 기구를 창설해 국회와 국민들의 구체적 개헌 방향성 논의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한 전 총리는 “개헌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누가 집권하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불행이 반복될 따름”이라며 “3년 안에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면 그 안이라도 기꺼이 하야하겠다”고 밝혔다.
개헌과 함께 △통상 문제 해결 △국민 통합을 새 정권의 소명으로 꼽았다. 통상 문제 전문가임을 부각한 그는 “수많은 통상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이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이라고 자신한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나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좌와 우로, 동과 서로 계속 갈라져야 하겠느냐”며 “모든 분야에서 국민 통합과 약자 동행이 이뤄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권은 ‘여러분의 정부’라고 명명했다. 그는 “저에게 가차 없이 쓴소리하시는 분들, 대선에서 경쟁하시는 분들을 거국 통합 내각에 모시겠다”며 야당·노조·언론·기업 등과 2주에 한 번씩 만나겠다고 했다.
이 후보를 겨냥한 발언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정치인이 개헌을 약속했지만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그때그때의 판세와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바꿨다”며 개헌에 유보적인 이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전날 탄핵 추진으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퇴한 것에 대해서는 “정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정말 실망했다”며 “비참함과 참담함을 느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층을 겨냥한 듯 안보 의제에서는 명확하게 우클릭 메시지를 내놓았다. 대북 기조와 관련해 “대화의 문을 활짝 열되 적대적 행위를 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억지력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며 “억지력이 북한을 자극해 대화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 출마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치권에 빚이 없는 자신이 정치 개혁의 적임자라는 답을 내놓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할 필요성에는 “한 번도 제 철학을 꺾으면서 대통령의 생각을 따라본 적 없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 측은 개헌 공약에는 독단적 계엄 선포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확장에도 곧바로 나섰다. 한 전 총리는 출마 선언 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쪽방촌을 찾아 오세훈표 정책인 ‘약자와의 동행’을 자신의 대선 공약에 담겠다고 밝혔다. 추후 전개될 국민의힘 대선 후보 등 범보수 단일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세 규합에 착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전 총리는 복지 정책 방향성과 관련해 “어떤 물건을 나눠드리는 것보다 본인이 갖고 싶은 것을 갖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총리는 호남 민심을 겨냥해 광주 5·18국립묘지도 참배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치권을 향해 빅텐트 구성 신호도 발신했다. 그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어느 누구와도 협력해나갈 것이고 필요하면 통합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정치적 연대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으로 3일 국민의힘 후보 선출과 함께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 총리는 무소속 신분임에도 출마식에는 추경호·성일종·송언석 등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참석했다. 한 전 총리 측은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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