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6일(현지 시간) 총리 선출을 위한 1차 투표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뒤 2차 투표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새 리더 자리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총리 후보가 1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1차 투표 결과’가 차기 메르츠 정부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독일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츠 대표는 이날 실시된 하원(분데스타크)의 총리 인준 1차 투표에서 총 630표 중 310표를 얻는 데 그쳤다.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필요한 표는 316표였으나 6표가 부족했다. 이날 307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3명은 기권했으며 9명은 불참했다. 1표는 무효였다. 메르츠 대표가 올 2월 연방선거 승리 후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과 연립정부 구성 협약을 체결했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앞서 2월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메르츠가 이끄는 기민당과 기독사회당(CSU) 보수 연합은 28.5%의 득표율로 승리했으나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연정 구성이 불가피했다. 이에 메르츠는 중도 좌파인 사민당과 대연정을 추진해왔으며 전날인 5일 양당은 연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1차 투표 결과가 나온 후 각 정당은 회의를 거쳐 이날 재투표 실시에 합의했고, 두 번째 표결에서 325표를 얻어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상·하원 양원제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직접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하원이 법률 제정과 총리 선출 등 주요 의사 결정을 담당한다. 독일 헌법상 1차 투표가 부결되면 14일 이내에 2차 투표를 할 수 있다. 당초 2차 투표가 당일에는 없을 것이라는 독일 현지 매체 보도가 나왔으나 주요 정당들은 긴급회의 끝에 2차 투표를 이날 오후로 잡았다. 투표를 더 미뤘다가는 정치적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메르츠가 힘겹게 총리직을 거머쥐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새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 큰 타격을 입었다. 1차 투표 과반 확보 실패는 메르츠가 자신의 당 내부에서 완전한 지지를 얻지 못했거나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 내 일부 의원들의 이탈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영국 BBC는 연정 협정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민당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 구성원들이 실제 투표에서는 메르츠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으로 봤다. 독일의 대표 민간은행인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합이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메르츠 정부의 정책 추진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짚었다. BBC는 정치 평론가들을 인용해 “이번 투표 결과는 사민당이 메르츠와 보수 연합에 가한 굴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1949년 이후 그 어떤 총리 후보도 이런 방식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며 “이는 현대 독일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무난한 투표 통과를 예상했던 메르츠는 당초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을 방문하고 취임 선서를 할 예정이었으나 뜻밖의 암초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극우 정당의 부상과 경기 침체 등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새 총리의 취임이 첫 스텝부터 꼬이면서 독일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표결 결과가 전해진 직후 독일의 대표 주가지수인 닥스는 1% 넘게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로 인한 실질적인 위험은 올해와 내년 예산 계획의 지연”이라며 “이는 단기 및 중기적으로 예상보다 약한 경기 부양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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