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연과학대가 출범한 지 5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국내 최대 자연과학 연구의 산실로 모인 세계적 연구진들이 자연과학이 걸어온 50년의 성과를 짚었다. 이들은 학생들을 향해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고 있어야 답을 도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9일 서울대 자연과학대 대형강의동에서는 자연과학 1차 미래포럼 ‘자연과학의 현재를 되짚다’가 열려 자연과학이 50년간 이룩한 성취와 현재를 진단했다. 미래포럼은 자연과학대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과거의 성과를 넘어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Science, Next 5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포럼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들이 모여 지금껏 진행해 온 연구를 총망라하며 자연과학도를 향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의 단장을 지내고 있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RNA: 생명의 기원에서 치료제까지’라는 주제로 RNA의 개념과 mRNA 백신의 세포 내 전달과 분해를 제어하는 단백질 군을 찾아내기까지 여정을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김 교수의 연구는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김 교수는 “mRNA 백신은 지금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쓰였지만 암에 대한 치료 백신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유전자를 목표로 만들 수 있고 안전하고 생산이 용이하다는 점, 개발 비용이 낮다는 점에서 RNA는 의약품 분야에서 유용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를 하다 보면 이상한 결과도 나오는데, 이는 과학자에게 축복과도 같다. 기존 이론에 맞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라며 “잘 모르는 무지(Unknown unknowns)을 내가 알고 있는 무지(Known unknowns)의 영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뇌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화학생물학과 교수도 포럼에 참석해 자신이 이끄는 ‘박 연구 그룹(Park Group)’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양자역학 원리를 기반으로 유기체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나노와 마이크로전자 도구 개발 등에 힘쓰고 있다.
양자 통신(Quantum communication) 등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를 소개한 박 교수는 “한국에선 완벽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완벽을 넘어 새로운 답을 만들어야 ‘트렌드세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갈수록 과학과 공학의 경계가 없어지기 때문에 뜻깊은 연구를 함께 펼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포럼에는 서울대 하이브리드 양자컴퓨팅 센터를 이끄는 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양자컴퓨팅의 미래를 진단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양자과학 기술은 다학제적 성격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서울대 인프라를 활용해 연구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확한 값을 계산하는 분야에는 발전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근사치를 도출하는 분야는 근시일 내에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전망했다.
국내 최초로 종신 교수에 임명된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종신석좌교수는 태양전지에서 활용되는 광물인 ‘페로브스카이트’와의 만남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물이다. 박 교수는 “좋은 연구를 위해서는 ‘재밌다’는 감정에서 시작해 정확한 질문을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연구분야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연구에 투자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대 자연과학대는 혁신·협력·지속 가능성·글로벌 리더십을 핵심 가치로 설정해 전 영역에서 체계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외 선도 대학과의 비교 등 미래 자연과학 분야를 이끌어 갈 인재 양성에 대해서는 다음달 13일 열릴 2차 포럼 ‘자연과학의 다음을 묻다’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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