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대 125%’의 벼랑 끝 싸움으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이 12일(현지 시간) 상대국에 부과했던 고율 관세를 115%포인트씩 인하하고 90일간의 휴전을 선언했다. 미국이 지난달 2일 상호관세를 부과한 지 40일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 재설정했다”고 자평했지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먼저 한발 물러섰다”며 사실상 ‘판정패’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3일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적 역풍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섰다는 분석에 무게를 실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헤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이 먼저 움찔했다”며 “무한정 관세를 올려도 자국 경제가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버티기 전략’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위기를 조성해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썼지만 중국은 고통을 감수하며 맞섰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책을 철회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에 도달한 배경에는 양측 모두 무역 전쟁으로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크레이그 싱글턴 연구원은 “양국 모두 외부에 보여진 것보다 실제 내상이 더 컸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각각 ‘승리’를 주장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리셋’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고 맞받았다. 일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미국이 겁먹었다”는 게시글까지 등장했다. 다만 이번 합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는 점은 한계라는 지적이다. 이를 의식한 듯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자국 무역기업들과 만나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실질적인 진전을 거뒀다”면서도 무역 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이번 합의가 완전한 종결이 아닌 ‘일시 휴전 상태’인 만큼 상황이 악화할 경우에 대비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미국 정부 역시 비슷한 기조를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제네바 합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디커플링이 실질적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라고 밝혀 관세 체제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 시장 개방을 이끌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편 미중 무역 협정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타결된 뒷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FT는 지난달 워싱턴DC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춘계회의 기간 동안 베선트 장관과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이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고 이날 보도했다. 당시 비밀 회담이 제네바에서 양국이 주요 쟁점에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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