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에 달하는 초고속 펄스 레이저 대신 레이저 포인터와 같은 일반 광원으로도 생체조직 내부를 또렷하게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초고속 레이저 없이도 이에 맞먹는 해상도와 깊이 침투력을 갖췄으며, 주변 조직 손상 없이 병변 부위만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광역학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박정훈·주진명 교수팀은 특수 나노 입자를 이용해 일반 연속파(CW) 레이저만으로 생체조직 내부를 3차원으로 촬영할 수 있는 비선형 형광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생체조직은 빛이 잘 산란돼 또렷한 내부 이미지를 얻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초점 부근에서만 형광을 발생시켜 산란에 의한 배경 잡음을 걸러내는 다광자 현미경과 같은 특수 관찰 기술로 생체조직을 촬영한다. 하지만 다광자 현미경 관찰은 고가의 펨토초 펄스 레이저를 광원으로 쓰기 때문에, 일반 병원이나 실험실에서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다광자 현미경은 레이저 광원에서 나온 두 개 이상의 광자(빛 입자)가 하나의 분자에 동시에 흡수될 때만 형광을 내는 원리로 배경 잡음을 억제하고 초점을 강화하는 장치다. 일반적인 레이저 광원으로는 광자 두 개가 동시에 한 분자에 도달할 확률이 낮아, 광자 밀도를 순간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빛을 모아 끊어 쏘는 펨토초 레이저가 필요하다.
공동 연구팀은 ‘상향변환 나노입자(UCNPs)’를 이용해 이 같은 펨토초 펄스 레이저 없이도 초점에서만 형광을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나노입자를 혈류를 통해 생체 부위에 주입한 뒤, 일반 연속파 레이저를 쏘면 나노입자가 레이저 속 광자를 하나씩 흡수해 에너지를 축적하고 이를 자외선 또는 청색광 형광으로 방출하는 방식이다. 방출 강도는 빛 세기의 제곱 또는 세제곱처럼 급격히 늘어나는 비선형 특성이 있어 초점 부근처럼 빛이 집중된 영역에서만 강한 형광이 나온다.
연구팀은 이 기술로 살아있는 생쥐의 뇌혈관을 약 800 마이크로미터 깊이까지 고해상도로 촬영했다. 이는 공초점 현미경보다 6배가량 깊은 수준이며, 다광자 형광 현미경과 비슷한 침투 깊이다. 또한 넓은 시야를 빠르게 영상화하는 와이드 필드 모드에서도 초당 30프레임 속도로 혈류의 흐름까지 실시간 관찰할 수 있었다.
개발된 기술은 광역학(PDT) 치료에서 병변 외의 조직이 손상되는 부작용을 줄일 수도 있다. 광역학 치료는 빛을 병변에 침투시켜 파괴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빛이 통과하는 경로의 정상 조직까지 함께 손상되는 문제가 있었다. 초점 부근에서만 형광을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하면 병변 부위만 선택적으로 자극하고 주변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정밀 광자극 치료를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제 ‘상향변환 나노입자’가 방출하는 자외선을 이용해 자외선 반응성 물질을 특정 깊이에서만 활성화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UNIST 김정모 박사와 이승훈 박사가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했다.
공동 연구팀은 “값비싼 초고속 레이저 없이도 고해상도 생체 이미징과 정밀 광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기술”이라며 “MRI 같은 기존 진단 장비와 병행하면 의료 현장에서 뇌혈류 흐름이나 국소적 대사 반응 등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과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치매극복기술개발사업단,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 포스코 청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았다. 재료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돼 5월 12일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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