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2일 오후 KTX 호남선 익산역에서 차량으로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육군의 악명 높은 3대 유격장 중 하나인 육군부사관학교 소속 ‘고산유격장’. 무더위와 강도 높은 훈련에 후보생들의 군복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표정이지만 카리스마가 넘쳐 보이는 유격교관들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후보생들을 보면서 취재를 위해 참관한 기자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어버렸다.
유격 훈련에 참가한 이들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육군 전투력의 중추로서 전장에서 분대급 전술을 지휘할 ‘전투 리더’인 육군 정예 부사관을 꿈꾸는 ‘양성 25-1기 민간 과정’의 부사관 후보생들이다.
처음 맞이한 유격장의 모습은 아찔했다. 산악 장애물 극복 훈련에 참석한 후보생들은 20m 높이의 산악에 연결된 단 한 줄의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횡단 훈련을 진행했다. 아찔해 보이지만 후보생들의 모습에서는 전시 산악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고소공포증을 이겨내려는 결기가 느껴졌다.
횡단 훈련에 이어 실시된 로프를 이용해 절벽을 뛰어내려가는 훈련은 감탄을 자아냈다. 큰 소리로 ‘유! 격!’을 외치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후보생들을 보면서 유격 훈련의 목적인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배양’은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기초 장애물 훈련을 참관했다. 정해진 장애물들을 통과하는 훈련으로 눈에 띄는 코스는 절대 혼자서 넘어갈 수 없는 ‘전우와 담장 넘기’다. 2~3인이 1개 조로 편성돼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장애물을 극복하는 모습은 목숨이 잃을 수도 있는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뜨거운 전우’를 몸소 체험하게 만들어주는 참다운 훈련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분대급 진지 공격 훈련을 지켜봤다. 공격 임무를 부여받은 후보생들은 분대 단위로 기동에 돌입했다. 공격 중 적군을 발견하자 기존의 종대 대형을 풀고 분대별로 빠르게 흩어졌다. 후보생들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엄폐한 뒤 대응 사격을 했다. “탕! 탕!” 공포탄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8명 내외로 구성된 분대는 사전 작전 계획대로 돌격·돌파·화력지원 등 역할을 나눠 작전을 수행했다. 돌파조는 장애물 개척 및 통로 확보를 위해 나갔고 후방에서는 화력지원조가 아군을 엄호했다. “쾅~!” 그때 폭음탄이 통로 우측에서 굉음을 내며 터졌다. 적군의 포탄 낙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돌격 분대는 흙탕물을 뛰어넘고 산비탈을 올라 적군을 소탕했다. 공격 임무는 그렇게 10여 분 만에 종료됐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후보생들의 모습에서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내겠다는 강인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훈련이 끝나고 후보생들은 현장에서 곧바로 교관으로부터 실시간 피드백을 받으며 작전 수행 방법을 보완했다.
심광호 육군부사관학교 주임원사는 “육군부사관학교는 전군 최고의 부사관 양성 및 보수교육기관으로 체계적인 교육 훈련을 갖췄으며 전문화된 교관들이 부사관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육군부사관학교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연구 및 교육해 전사 중심의 학교 명예와 전통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통해 현대전에서 드론은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전투의 핵심 전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군대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번에는 부사관 대상 6개 보수 과정 중 하나인 ‘드론전술운용과정’을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봤다.
훈련장에 다가서자 갑자기 들려오는 ‘윙~’ 소리가 기자를 맞았다. 기체를 감싼 드론볼 안에서 맹렬한 기세로 돌고 있는 드론 프로펠러 소리였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한참 공중에 가만히 떠 있던 드론은 경로를 바꿔 격실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구조를 확인한 드론은 책상과 벽에 붙어 있던 표지를 정확하게 탐지한 뒤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드론에 달린 디지털카메라로 그대로 생중계됐다.
고글을 쓰고 조종기를 잡은 교관의 모습은 마치 SF 영화 속 사이버 전사 같았다. 야외 연병장에 설치된 게이트 구조물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표적 그물망에 정확하게 직충돌하는 미세한 컨트롤까지 보여주면서 그동안 습득한 운용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야전부대 부사관을 대상으로 드론 조립·정비, 기본 조종, 전술적 운용 등 총 8주 과정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군 드론 운용 자격을 부여받아 야전부대 드론 운용 요원 및 소속 부대 교관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천승환 드론학과장(상사)은 “전군 최초로 창설된 자폭 드론 과정 전문교관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실제 전장에서 활용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전술 연구와 더불어 공격 드론의 인식 개선, 자폭 드론 운용자 확산, 장비 전력화, 무엇보다 최강 부사관 육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장에서 부상자 발생 시 대처의 핵심은 출혈을 막는 것이다. 부상자의 운명을 전사자와 생존자로 가르는 것은 이 출혈을 잡는 전투원 개개인의 초기 대응 능력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전투부상자처치(TCCC·Tactical Combat Casualty Care)’가 모든 전투원이 배워야 하는 필수 과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전군 훈련 기관 가운데 유일한 TCCC 전문교관 과정을 찾았다.
“환자 발생! 내 말 들려?” “환자 의식 있고 관통상입니다.” 부상자를 엄폐물 뒤로 옮긴 장병은 ‘전투용 응급처치 키트’를 꺼내들더니 가위로 전투복을 자르고 지혈을 시도했다. 전투원 전원이 휴대하는 응급처치 키트는 작전 중 사고로 피를 많이 흘리는 부상자 응급처치에 쓰이는 것으로 지혈대, 압박붕대, 응급 지혈 거즈 등이 들어 있다.
이내 구멍이 뻥 뚫린 모형을 꺼내더니 그 속에 응급 지혈 거즈를 채워넣었다. 이 모형의 정체는 ‘총상 지혈 훈련 키트’다. 육군이 실전적인 TCCC 훈련을 위해 보급하기 시작한 4종의 공통 교보재 중 하나다.
육군은 2021년부터 현대전의 특성과 북한의 도발 양상을 고려해 기존 구급법 교육을 대체하는 TCCC 훈련 체계를 도입했다. 육군의 TCCC 체계는 미군·캐나다군·독일군 등에서 효과가 검증된 ‘전술적 TCCC’를 우리 실정에 맞게 보완한 것이다.
우태식 전투부상자처치과정 전문교관(원사)은 “전투 부상자 처치 수행 능력이 임무 완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며 우수한 TCCC 전문교관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보수교육을 통해 관련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생들에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끝으로 신병 양성과 부사관 훈육을 전담하는 전문교관이 될 ‘훈련부사관’을 양성하는 과정을 방문했다. 훈련부사관은 육군 부사관의 1%에게만 자격이 부여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부사관이다.
육군 신병의 교범이 될 교육생들인 만큼 선발 때부터 부사관 중에서 근무 평정과 교육 성적이 모두 중·상 이상인 자원들을 가려 뽑는다. 교육과정도 엄격하다. 교육 기간 내내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해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신병이나 부사관 양성 기간 중의 생활 패턴에 맞춘 것이다.
측정을 통해 80% 이하를 받은 과목은 한 번의 재평가 기회를 주고 이때도 미달하면 바로 퇴교시킬 정도로 어떤 과정보다 엄격하다. 개인화기·각개전투 등의 과목을 숙지하는 것 외에 교수법, 훈육 기법 숙달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교육 훈련 시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모범을 보임으로써 막 군문에 들어선 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만큼 훈련부사관의 규범은 엄격하다. 화내지 말라, 욕하지 말라, 불평·불만하지 말라, 미루지 말라,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5금(禁)’과 정리정돈하라, 겸손하라, 협조하라, 인내하라, 확인하라라는 ‘5행(行)’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한다.
김상우 육군부사관학교 교수부장(대령)은 “‘최고를 꿈꾸는 자! 육군부사관학교로’라는 문구처럼 육군부사관학교는 전군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의 전투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며 “육군 부사관의 기준이자 심장, 고향으로서 미래 전투 현장에서 최고의 전투 기량을 발휘하고 첨단 전력을 운용하는 전투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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