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의 ‘월권’ 판단으로 무효 결정이 내려졌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상호·펜타닐 관세가 하루 만에 일단 효력을 되찾았다. 항소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로 최소 6월 9일까지 ‘트럼프 관세’의 효력은 유지된다.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관세정책에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미국 법원마저 엇갈린 판결을 내리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DC 소재 연방 항소법원은 29일(현지 시간) 1심 재판부 격인 CIT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등을 무효로 한 판결에 대해 집행을 일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긴급 제출한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을 제기한 기업 등에는 6월 5일까지, 행정부에는 9일까지 의견을 제출하라고 해 최소 9일까지 기본·상호·펜타닐 관세는 이전처럼 부과된다. 이후 법원이 정부의 요청을 기각하면 상호관세 등이 무효가 된 상태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받아들이면 관세가 부과되는 가운데 항소심을 이어간다.
이런 가운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관세 조치를 차단하는 또 다른 판결도 이날 나왔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은 교육용 장난감 업체 2곳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IEEPA가 시행된 50년간 어떤 대통령도 이 법을 토대로 관세를 부과한 적이 없다”며 관세 조치를 차단했다.
CIT의 전날 판결 이후 관련 언급을 하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오후 트루스소셜에 “대법원이 이 끔찍하고 국가를 위협하는 결정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뒤집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또 “급진 좌파 판사 등이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며 “이 결정이 유지되면 대통령의 권한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고 대통령직은 결코 예전같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성향 대법관이 6대3으로 보수 우위인 상황이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는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에서 원고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비즈니스에 “(관세 부과를 위한) 3~4개의 다른 방법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이를 추구하는 것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판결이 잘못됐다고 매우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에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마이클 제자스 모건스탠리 글로벌리서치총괄은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122조, 무역법 301조 등 행정부가 관세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많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150일간 최대 1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무역법 122조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앨릭 필립스 골드만삭스 미국 정치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행정부에 타격이기는 하지만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은 일단 미국과의 예정된 협상에는 응하며 셈법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이 다음 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급 회의 자리에서 애초 계획대로 미국과 무역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천밍치 대만 외교 차관도 블룸버그에 “대만은 계속 협상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이 미국과의 예비 무역 협정을 완전히 위반했다며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2주 전만 해도 중국 경제는 미국의 고율 관세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며 "우리가 아닌 그들을 위해 매우 빠른 무역 협상을 성사시켰지만 중국은 우리와의 약속을 완전히 어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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