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새 사기 범죄가 50%가량 느는 등 급증하고 있으나, 실제 피해자 환부 금액은 연평균 80억원에도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꼽히는 법원의 배상명령 청구 인용률도 30%대까지 떨어졌다. 전세 사기, 리딩방 등 각종 신종 사기 범죄가 우후죽순 늘면서 서민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만큼 피해자 구제책 구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범죄 피해 재산 환부 평균 금액은 77억 7577만 원에 그쳤다. 지난해의 경우 환부 금액이 293억 558만 원에 이르기는 했으나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8000만~52억원에 불과했다.
사기 피해 구제 방안은 크게 범죄 피해 재산 환부, 배상명령 청구, 민사소송 등 세 가지다. 그중에서 2019년 8월부터 시행된 환부는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제6조에 따라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하지만 범죄 피해 재산의 범위가 사기죄 가운데서도 상습·범죄단체 등으로 제한돼 있는 등 법적 한계가 뚜렷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행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청구권이나 손해배산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어 피해 회복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범죄 피해 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다. 또 이를 피해자에게 환부한다. 범죄 피해 재산은 피의자가 범죄 행위를 통해 피해자로부터 취득한 재산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보이스피싱, 유사수신과 함께 형법상 사기죄가 환부 대상에 포함된다. 단 사기죄의 경우 상습범이거나 범죄단체 조직 범행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최근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리딩방이나 로맨스 스캠 등은 사기죄에 포함되는데 상습범이라든가, 범죄단체의 조직적 범죄라고 인정되지 않으면 환부 대상 자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법원의 유죄 판결 이후 절차가 진행돼 시일도 오래 걸린다.
홍푸른 디센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효과적인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한층 폭넓은 몰수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부패재산몰수법상 사기 범죄는 상습, 범죄집단 등으로 범위의 제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금전 손실을 입은 사기 피해자 입장에서는 빠른 구제가 절실한 데도 환부 대상 혐의가 다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환부 대상 범죄 확대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은 3건이다. 전세사기를 비롯해 리딩방, 가상자산 사기, 로맨스 스캠 등 신종 사기를 몰수 및 추징 보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세사기의 경우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만 경매·매각 유예와 정지, 공공임대주택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융자 등 지원만 이뤄질 뿐, 환부 대상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법원이 직접 가해자에게 피해 금액을 돌려주라고 명령하는 배상명령 역시 인용률이 2020년 49.8%에서 2023년 35.5%까지 낮아졌다. 사기 등 범죄 피해자가 제기한 배상명령 신청 10건 가운데 7건이 각하되고 있는 것이다.
배상명령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에 따른 국내 대표적인 피해자 구제 조치다. 사기, 절도 등 재산 범죄 피해자가 별도 민사소송 없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1981년 도입됐다. 소송촉진법 제25조(배상명령)에 따르면 유죄 선고 경우 법원은 직권이나 피해자 등 신청에 따라 범죄 행위로 발생한 물적 피해, 치료비 손해, 위자료의 배상을 명할 수 있다. 대상 혐의도 사기를 비롯해 상해, 성폭력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해마다 법원의 배상명령 인용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피해자들에게는 효과적인 피해 구제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배상명령 각하 사유는 주로 피해자 성명·주소가 분명하지 않거나, 피해 금액이 특정되지 않은 경우다. 또 피고인의 배상 책임의 유무 또는 그 범위가 명백하지 않은 때도 포함된다. 배상명령으로 인해 공판 절차가 현저히 지연될 우려가 있거나 형사소송 절차에서 배상명령을 하는 게 타당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각하 사유다.
문제는 배상명령 신청의 필수 요건인 피해 금액을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계좌가 동원되고, 피해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 금액을 특정해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피고인으로부터 일부라도 피해 금액을 변제받았을 경우 법원이 ‘피고인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해 추후 보상받을 길이 막힐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5000만 원을 편취한 후 단 100만 원이라도 갚으면 이미 일부를 배상했기 때문에 피고인의 배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배상명령 청구는 형사재판과 함께 진행되는데 1심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배상명령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민사재판에 해당하는 보상 판단을 형사재판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간도 오래 걸린다”며 “반드시 피해 금액을 산정해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기 사건의 지능·고도화로 돈의 흐름이 한층 복잡해지면서 피해자가 스스로 어느 정도 금전적 손실을 입었는지 산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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