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의 비핵화 협상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중동 지역에 주둔한 외교·군 인력 가족에 대한 철수 조치에 들어갔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란 및 친이란 무장 세력과 중동 내 미군, 이스라엘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조되는 긴장에 국제유가도 두달 만에 최고치로 급등했다.
1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라크 바그다드의 주재 대사관에서 비(非)필수 인력 전원을 철수시키라고 지시했으며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 인근 국가에서도 일부 공무원과 가족들의 출국을 허가했다. 미국 국방부 역시 중동에 주둔한 미군 장병 가족들의 자발적 출국을 승인했다. 외신들은 이 같은 조치가 군사행동의 전조이자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 카드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철수 지시를 직접 확인하며 “(긴장 완화) 해법은 간단하다. 그들(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이번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며 위협했다. 아지즈 나시르자데 이란 국방장관은 이날 텔레비전 연설에서 미국과의 핵 회담이 타결되기를 희망한다면서도 “충돌이 발생하면 상대방은 의심할 여지 없이 더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저 없이 주둔국의 모든 미군 기지를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과 그 우군 세력인 ‘저항의 축’은 이미 2023년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라크·시리아 내 미군을 공격해온 전례가 있다.
미국과 이란은 15일 오만에서 6차 비핵화 협상을 갖는다. 사실상 이번 회담이 양국 간 마지막 협상 기회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락치가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모든 핵무기 관련 활동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란은 최소한의 민간용 우라늄 농축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이란이 신규 농축 시설을 짓지 않고 기존 인프라를 해체하는 조건으로 민간 수준의 저농도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제안을 했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하고 역제안을 예고한 상태다.
중동 내 지정학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도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4.88% 상승한 배럴당 68.15달러를 기록했으며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4.34% 오른 69.77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가 69달러 선을 돌파한 것은 두 달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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