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은 배우 카이를 위해 재단된 맞춤옷 같은 작품이다. 2015년 초연부터 타이틀롤을 맡았고 네 시즌 무대에 오른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섯 번째 시즌이자 피날레 공연에 출연해 ‘영원한 팬텀’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를 1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EMK뮤지컬 사옥에서 만났다.
카이는 ‘팬텀’이 1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원작인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힘을 꼽았다. 그는 “환상 속의 인물, 숭고한 사랑, 허무맹랑할 수 있는 상상력 등 뮤지컬화하기 좋은 요소를 갖춘 작품”이라며 “최근 콘텐츠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이 많은데 ‘팬텀’은 반대의 결을 가진 순수하고 클래식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미국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분을 석권한 ‘어쩌면 해피엔딩’도 이와 비슷한 감수성이 현지 관객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문 기사에서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순수한 사랑을 꼽았는데 충분히 동의한다”며 “사랑과 이별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팬텀의 사랑은 지고지순하고 바보 같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헬퍼 로봇의 사랑도 그런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팬텀’은 순수한 사랑이 있던 ‘순수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관객에게 보내는 세레나데라는 것이다.
‘팬텀’은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흉측한 얼굴 탓에 파리의 오페라극장 지하에 유령처럼 숨어 지내던 에릭(팬텀)이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의 노래를 듣고 단번에 매료되고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카이는 이 작품에서 에릭 역을 맡았다.
팬텀은 기형적인 얼굴을 가리려 가면을 쓴다. 카이는 “가면은 상처와 아픔의 메타포(은유)”라며 “우리도 비틀어진 마음과 모습을 감추려 각자의 가면을 쓸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텀 그대로를 사랑하는 크리스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지 않냐”며 “관객들이 부족한 것마저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사랑과 삶에 접근하기를 바래 본다”고 강조했다.
작품에서는 박효신, 전동석도 팬텀을 연기한다. 자신만의 매력을 묻자 카이는 “너무 무서운 질문”이라며 진땀을 흘렸다. 그러면서 “박효신은 호소력 짙은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매력이 있고, 전동석은 뛰어난 외모에 실력이 가려진 배우”라고 치켜세우며 노련하게 즉답을 피했다. 관객들은 뮤지컬 배우 카이의 장점으로 시원하면서도 정확한 발성과 기본기 탄탄한 안정적인 가창력,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게 때로는 섬세하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무대 장악력과 어떤 캐릭터를 맡든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작품 해석력을 꼽는다.
2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하며 K뮤지컬의 발전을 지켜본 그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에 대한 감회도 전했다. “한 사람의 ‘뮤덕(뮤지컬 덕후)’으로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K뮤지컬이 진짜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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