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꿈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국내에 출시됐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체중을 14kg 감량한 비결로 언급한 그 약이다. 출시 후 7개월이 지난 시점에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위고비를 찾고 있음을 실감한다. 경쟁사인 일라이릴리도 이미 우수한 비만 치료 효과가 검증된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의 국내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노보노디스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경구용 위고비의 신약 허가를 신청했고 일라이릴리가 경구용 비만약으로 개발 중인 오포글리프론의 3상 임상 시험 결과를 발표해 주사제의 불편함을 극복할 경구약의 도입도 머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국내 제약사인 한미약품(128940)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계열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상용화 시점을 2026년 하반기로 앞당기는 등 향후 비만약 시장은 매우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비만약이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배경은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사질환의 유병률이 동반 상승한 것과 관련이 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2년 성인 인구의 약 16%인 8억 7900만 명, 소아청소년의 약 8%인 1억 5900만 명이 비만으로 조사됐다. 1990년과 비교해 각각 2배, 4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대한비만학회가 발간한 ‘2024년 비만병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의 비만 유병률은 2013년 30.6%에서 2022년 38.4%로 증가했다. 특히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인 2단계 비만과 35kg/㎡ 이상인 3단계 비만(고도 비만)의 유병률은 각각 1.6배, 2.6배나 뛰었다. 성인의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2013년 23.3%에서 2022년 28.6%로 1.2배 증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향정신성 의약품이 주도하던 비만약 시장에 GLP-1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들이 등장한 것도 활력을 불어넣은 요소로 꼽힌다. 비만 환자에게 위고비를 68주간 사용한 STEP1 연구와 마운자로를 72주간 투여한 SURMOUNT-1 연구는 각각 14.9%와 20.9%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체중을 5~10% 줄이는 데 그쳤던 기존 비만약보다 감량 효과가 월등할 뿐 아니라 자살 충동, 우울증 등 정신 건강 관련 부작용 발생률도 낮은 것으로 보고돼 장기간 투여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된 기준 내에서 비만 치료 목적의 GLP-1 유사체 처방에 대해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 비만 유병률 및 심각도의 증가는 제2형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비알콜성 지방간·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등 동반질환 뿐 아니라 대장암·간암·갑상선암 등 다양한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각종 질환의 유병률 상승은 국가 전체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에서는 BMI 35kg/㎡ 이상 또는 27kg/㎡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중 2가지 이상의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 국가 의료보험으로 GLP-1 유사체 처방이 가능해졌다. 고도비만에 대한 비만대사수술의 적응증과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GLP-1 기반 비만약은 현재 고도비만 환자에게 적용되고 있는 수술적 치료를 대체할 수 있을까? 모든 환자는 비슷한 효과를 가진 여러 치료법 중 가장 덜 침습적인 치료를 받길 원한다. 수술에 따른 위험도, 장기적인 합병증에 대한 우려 외에도 수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비춰볼 때 비만약의 체중 감소율은 최대 20% 수준으로, 수술 후 평균 감량치인 약 30%에 미치지 못한다. 비만 관련 동반 질환 개선율도 아직은 수술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체중 감량의 지속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비만대사수술의 경우 10년 이상의 장기 추적 관찰에서 수술 전 체중 대비 20% 이상의 감량 효과를 유지한 반면 위고비 등 GLP-1 유사체 약물의 경우 체중 감량 결과를 주안점으로 본 연구의 추적 관찰 기간은 최대 2년에 불과하다. 68주간 위고비를 투여 후 1년간 약물을 중단할 경우 이전에 감량했던 체중의 3분의 2가량이 다시 증가하는 일명 ‘요요현상’을 보였다. 약값이 비싸 경제적 부담이 크다 보니 장기간 약물 치료를 유지할 수 있는 환자는 매우 제한적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해봐도 아직은 GLP-1 기반 약제가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GLP-1 외에 여러 종류의 위장관 호르몬을 이용한 신약 개발이 진행 중이고 비만의 병인과 치료 기전들이 빠른 속도로 밝혀지고 있는 만큼, 머지 않아 수술의 효과를 따라잡을 만한 약제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양한 약제가 발전할수록 비용 개선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만대사수술을 주로 담당하는 외과의 입장에서 GLP-1 유사체의 등장과 발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BMI 50kg/㎡ 이상인 초고도 비만 환자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비만대사수술 전후 GLP-1 기반 약제를 사용하면 수술만 받았을 때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컸다는 연구 결과들도 보고되고 있다. 초고도 비만 환자에서 다양한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과 약물 치료의 시너지를 유발해 최대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병용 치료가 더욱 각광을 받고, 나아가 고도비만 치료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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