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께 올해 레오 14세 교황님을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드렸고 대통령실에서 교황청에 보낸 서한에도 비슷한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흥식 추기경은 3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장관을 역임한 그는 바티칸에서 휴가차 지난달 30일 귀국해 이달 말까지 국내에 머문다. 유 추기경은 “여러 차례 방한 경험이 있는 새 교황께서는 이해도가 높아 남북 문제와 북미 관계 개선에 큰일을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 대통령께 올해 안에 로마 바티칸을 방문했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이 대통령 측이 레오 14세 교황 선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청에 보낸 서한을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교황님이 편지를 받고 매우 좋아하셨다”며 “교황청과 한국, 특히 새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또 “외교상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른다”면서도 “대통령의 친서에 가까운 시일 내에 교황을 찾아뵙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가까운 시일을 올해 정도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레오 14세 교황과 가까운 사이라고 소개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중 주교부 장관으로 활동했고 유 추기경은 성직자부 장관을 역임해 업무상 자주 소통하는 사이였다. 그는 “당시 추기경이던 레오 14세 교황이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살았다”며 “층간소음이 시끄럽지 않느냐고 농담을 건네면 ‘걱정하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지내서 괜찮다’고 답해 서로 웃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경향이 강했던 반면 레오 14세 교황은 조용하고 경청을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레오 14세가 최초의 미국인 교황으로 주목받는 것에 관해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은 그가 미국인이라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선교사로 인식했다”며 “가장 가난한 지역인 페루에서 20년이나 선교사로 활동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님께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할 때 남북 평화, 순교자의 나라 대한민국, K팝,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 등의 주제에 주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한국 사회를 향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웃에게 소금과 누룩 역할을 하는지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정치인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하셨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라며 “정치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애를 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한국인 추기경이 나올지를 묻는 질문에 유 추기경은 “교황께서 올해 말쯤 적당한 때에 새 추기경을 임명하실 것”이라며 추가로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으로 재직하던 2021년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교황청 장관에 한국인이 임명된 첫 사례다. 유 추기경은 2022년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로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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