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감세 조치를 담은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 미 의회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무역·외교안보 정책이 전방위적으로 탄력을 받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 법안 통과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다음 달 1일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못 박고 이란 핵협상, 미중 정상회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진행된 미국 독립 250주년 축하 행사에서 미 하원 감세 법안 통과 소식을 두고 “경이적인 승리”라고 자축했다. 그는 “미국에 이보다 더 좋은 생일 선물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세금 감면, 최대 규모의 (연방정부) 지출 삭감, 최대 규모의 국경 보안 투자가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또 “감세와 군 재건 등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대해 단 한 명의 민주당 의원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다”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이를 활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 하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고 세금 감면부터 불법 이민 차단, 부채 한도 상향을 한데 모은 법안을 찬성 218표, 반대 214표로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에 맞춰 이 법안에 서명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전 세계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 압박 작업에 착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최고 상호관세율은 4월 발표한 수준보다 높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오와주에서 워싱턴DC로 돌아오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다음 달 1일로 지목하면서 4일에만 20~30% 수준의 세율을 담은 10~12개의 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서한 발송 작업은 9일까지 이뤄질 것이라며 “아마도 관세율은 10~20%부터 60~70% 범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미뤄뒀던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도 빠르게 재개되는 분위기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정부가 다음 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란과 고위급 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양국 간 핵협상 재개를 논의하기 위해 아바스 아그라치 이란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회담이 성사되면 지난달 21일 미국이 이란 핵시설 3곳을 공격한 후 양국이 갖는 첫 공식 회담이 된다. 미국과 이란은 당초 지난달 15일 오만에서 6차 핵협상을 개최하려 했으나 이스라엘이 같은 달 12일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시설 등을 기습하면서 전격 연기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전화를 돌려 순방 기간 동행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등 10월 말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 준비 작업에도 돌입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추진하면서도 대규모 CEO 동행을 통해 경제협력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얼마나 많은 CEO가 참여 요청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순방 경제사절단 구성이 5월 중동 방문 때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동 순방 당시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 보잉의 로버트 켈리 오트버그 CEO,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 팰런티어의 알렉스 카프 CEO,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등이 대통령과 동행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동행을 거부했던 팀 쿡 CEO의 애플은 공교롭게도 이후 미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논의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과 나눈 대화에 매우 실망했다”며 “그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 측도 4일 “현재로서는 정치·외교적 해법(을 통한 종전)은 불가능하다”며 종전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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